DMZ 전시
연강갤러리
작성일 2023-08-18
연강갤러리
체크포인트를 지나 태풍전망대 가는 중간쯤에 위치한 연강 갤러리는 민간인 통제 구역 마을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경기문화재단에서 전시장으로 조성하여 연천군 작가의 전시를 위해 사용하던 공간입니다. 전시장 밖, 야외에는 에코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연강갤러리에 들어서면 음악 소리를 접하게 됩니다. 킴 웨스트팔의 레코드 작업 〈스파이시 메모리〉가 전시장 입구에서 소리로 관객을 맞이합니다. 1층 전시장 왼쪽 벽에서 서용선의 〈전쟁과 여인〉과 이재석의 〈오성텐트〉를 볼 수 있습니다. 〈전쟁과 여인〉은 남편을 잃고 평생을 산 부녀자의 모습, 즉 전쟁 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쟁으로 인한 죽음이 산 사람들에게 남긴 트라우마와 고통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이번 연천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입니다. 파주에 전시되었던 이재석의 여러 작업 중 〈오성텐트〉는 전시장 입구에 설치됩니다. 전시장 중간에는 임민욱의 작업 〈커레히 - 홀로서서〉가 작은 규모로 설치됩니다. 전시장의 오른쪽 벽에는 이끼바위쿠르르의 〈덩굴: 경계와 흔적〉이, 전시장 안쪽에는 조경진/조혜령의 남북의 부르는 이름이 다른 식물을 보여주는 영상작업과 성립의 디엠지 식물을 그린 애니메이션, 킴 웨스트팔의 디엠지에서 발견한 난초를 태피스트리 기법으로 만든 〈아이소트리아 메데올로지스, 다시 꿈꾸는 DMZ〉가 놓입니다. 2층 전시장에는 써니킴, 권혜성, 마키코 쿠도, 박노완, 성시경, 이우성의 작업이 재구성됩니다. 전시장의 바깥 공간에는 정소영의 조각 〈환상통〉이, 그리고 임진강 평화습지원의 수풀 사이에는 최원준의 〈언더쿨드〉 시리즈와 토모코 요네다의 사진 〈지뢰 - DMZ I〉가 산책길을 따라 설치됩니다.
정소영 Soyoung Chung
정소영(b.1979)은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낸 후 파리의 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장소 특정적 설치, 조각, 비디오, 공공적 개입 등의 활동을 통해서 공간의
정치학에 대하여 질문해 왔습니다. 지질학을 통해 역사의 면면을 시각화시켜 온 작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에서 형성되는 시간의 근원적 층위를 심도 있게 연구하며, 역사와 시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다층적 관계를
사회의 불확정성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합니다. 정소영은 2011년 OCI 영 크리에티브, 2016년 송은미술대상 우수상 등을 수상했으며, 금호미술관(2007), PS 사루비아(2008), 대림미술관구슬모아
당구장(2013), 아트선재 오프사이트(2016), 원앤제이갤러리(2021), CR Collective(2022) 개인전과 Real DMZ project(2018, New Art Exchange,
Nottingham, U.K), Borderless-Curitiba International Biennale(2019, Oscar Niemeyer Museu, Brazil), Power Play(2019,
Delfina Foundation, London, U.K) 그룹전을 가졌습니다.

정소영, 〈환상통〉, 2023, 자연석, 스테인레스판, 베어링, 약 140 × 90 × 60 cm, 40 × 60 × 70 cm, 작가 제공
환상통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신체의 부위에서 고통을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각각 한 면이 절단된 두 개의 돌은 본래 서로 하나였는지 혹은 다른 두 개의 돌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지속적으로 빛과 위치에 따라 변화하며 보이는 절단된 돌의 형상은 과거 돌의 형상과는 무관하게 새로운 모습을 보입니다. 잘려 나간 돌 위에 계속해서 변하는 금속에 몸을 붙여 존재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불확정적 상태는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지각하고 기억하는 존재-부재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전망대에 올라서서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인식 속에서 사라지고 없는 부분을 감각하는 모순된 상황에 놓이고, 물리적 존재의 유무보다 기억의 작동에 더 강한 영향을 받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정훈 Jung-hoon Lee
이정훈(b.1969)은 경기도 연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입니다.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뉴욕 브룩크린 칼리지(Brooklyn College)에서 M.F.A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자연에서 얻은 이미지들의 드로잉을 통해 유기적으로 확장되거나 해체하며 시작합니다. 얻어진 이미지는 재료를 꼬거나 말거나 겹치게 하여 시간의 형태가 만들어지며 그 과정 중 선택된 우연의 결과물로 작품의 형태를
결정합니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반복된 행위 통하여 무한한 시간의 영속성과 모호한 형태와 공간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mirror》(Gallery 통, 서울, 2012), 《Day by Day &
Eternity》(Gallery 허브빌리지, 연천, 2008), 《Time And Repetition》(금산갤러리, 서울, 2002), 《Question of Spot》(Pleiades Gallery, 뉴욕,
1998) 등이 있으며, 《지혜의 씨앗 연천, 사람들》(peacebricks, 연천, 2020), 《ECO-ART 연천 국제조각 심포지엄》(구석기박물관, 연천, 2009)등 다수의 그룹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이정훈, 〈금지된 걸음〉, 2023, 철, 철조망, 170 × 80 × 80 cm, 작가 제공
전쟁이 멈춘 70년, 걸음도 묶여버린 시간을 철로 만든 다리와 이를 아프게 옥죄는 얽힌 철조망으로 형상화한 〈금지된 걸음〉은 현재 남북의 경계 상황과 이동이 불가능한 우리의 영토를 직설적으로 드러냅니다. 이정훈은 언젠가는 철조망으로 덮인 족쇄와도 같은 굴레를 벗어나고, 나아가 하나 되는, 통일 대한민국을 바라며 작품을 구성하였습니다.
킴 웨스트팔 Kim Westfall
킴 웨스트팔(b.1986)은 서울에서 태어나 뉴욕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예술가입니다. 터프트건을 활용한 태피스트리 기법을 활용하여 그의 개인적인 역사와 미국의 중첩된 역사를 결합하고 있습니다. 뉴욕의 화이트 컬럼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Jerome Foundation Travel and Study에서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2021년 "As an Angel-American"이라는 배너를 제작하여 비행기에 설치한
공공예술작품을 2023년 11월 그리스의 알로슈 베니아스 갤러리에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킴 웨스트팔, 〈스파이시 메모리〉, 2023, 아크릴, 레진, 오간자 리본, 입양 서류, 고춧가루, 레코드 플레이어, USB 드라이브, 11인치 아크릴 LP, 작가 제공
한국의 카페에서 마주치는 제3의 장소라는 콘셉트에서 영감을 받은 〈스파이시 메모리〉는 가상의 상호작용을 하는 오늘날 한국 자연의 모습과 군사화되고 정적인 DMZ 체크포인트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작가가 텍스타일 작업을 위해 선택한 재료인 리본, 고춧가루, 찢어진 입양 서류는 턴테이블의 아크릴 레진 레코드판 위에서 회전합니다. 레코드판의 바늘은 레코드판과 닿지 않습니다. 대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감상적인 미국의 팝 음악이 흘러나오며 예상을 뒤엎습니다. 미군 장교의 숙소에 설치된 〈스파이시 메모리〉는 캠프그리브스의 역사와 미국 그리고 한국 간의 복잡한 상호 관계를 연결합니다. 소리 없이 회전하는 재생할 수 없는 곡이 담긴 레코드판은 이념적 공간이자 자연 보호구역 그리고 군사적 체크포인트로서의 비무장지대의 모순을 반영합니다.
서용선 Suh Yongsun
서용선(b.1951)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을 하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및 명예교수를 역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 개인전으로 《서용선의 마고이야기, 우리 안의 여신을
찾아서》(서울여성역사문화공간 여담재, 서울, 2021), 《만첩산중(萬疊山中) 서용선회화》(여주미술관, 여주, 2021), 《통증·징후·증세: 서용선의 역사 그리기》(아트센터화이트블럭, 파주, 2019), 《확장하는
선, 서용선 드로잉》(아르코미술관, 서울, 2016), 《서용선의 도시그리기: 유토피즘과 그 현실사이》(금호미술관 / 학고재갤러리, 서울, 2015), 《기억·재현, 서용선과 6.25》(고려대학교 박물관, 서울,
2013) 등이 있습니다.

서용선, 〈전쟁과 여인〉, 2010, 캔버스에 아크릴, 130 × 162 cm, 서용선 아카이브 제공
전쟁으로 인해 죽어간 일반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입니다. 많은 부녀자는 남편과 자식을 잃고 평생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은 무기에 의한 살상과 함께 인간성의 실험장이기도 합니다. 적군에 대한 맹목적인 적개심이 동물적 본능과 결합하여 필요 이상의 살상이 이루어집니다. 이 그림들은 전후 미아리 공동묘지 주변에 뒹굴던 해골들에 대한 체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수년간 지속된 일상의 체험과 오늘날 인간의 죽은 모습조차 보기 힘든 도시적 삶과의 대비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 그림에서 전쟁에서의 죽음이 어떻게 산 자들에게 고통으로 다가오는가 하는 점과, 죽음과 폐허로 변해버린 산하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녹색조의 색채는 그 황폐함을 넘어서, 자연의 생명력을 암시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는 내 안에서 느끼는 죽음 너머의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이중의 갈등이 아닌가 생각하게 합니다. 50년대 말과 60년대 초의 미아리 공동묘지 주변의 체험이 스며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아국민학교 개교하기 전 운동장에 정리 안된 해골들의 모습의 기억이 6.25전쟁의 내용으로 변환된 것입니다. (2013년 2월 7일 작가노트)
이재석 Jaeseok Lee
이재석(b.1989)은 목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미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챕터투(2022), 서울시립미술관 SeMA 창고(2021)에서의 주요 개인전을 포함하여, 갤러리바톤(2023),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2022), 서울대학교 미술관(2022), 스페이스 K(2020), 대전시립미술관(2019) 등 유수 기관의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대전시립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이재석,〈오성 텐트〉, 2020, 캔버스에 아크릴, 겔 미디엄, 161.7 × 240.9 cm, 작가 및 갤러리바톤 제공
이재석은 군대에서의 자전적 경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수년간 신체와 물체의 구성 요소가 지닌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실내외의 경계가 명확해진 시대적 변화와 군중을 피해 자연으로 떠나기 시작한 사람들의 모습을 ‘안’과 ‘밖’이라는 양가적 속성을 지닌 ‘텐트’라는 소재로 표현합니다. D형 군용 텐트에 권력과 허상을 상징하는 별이 표현된 〈오성 텐트〉를 통해 작가는 안과 밖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인지 분단된 국토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킴 웨스트팔 Kim Westfall
킴 웨스트팔(b.1986)은 서울에서 태어나 뉴욕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예술가입니다. 터프트건을 활용한 태피스트리 기법을 활용하여 그의 개인적인 역사와 미국의 중첩된 역사를 결합하고 있습니다. 뉴욕의 화이트 컬럼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Jerome Foundation Travel and Study에서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2021년 "As an Angel-American"이라는 배너를 제작하여 비행기에 설치한
공공예술작품을 2023년 11월 그리스의 알로슈 베니아스 갤러리에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킴 웨스트팔,〈아이소트리아 메데올로지, 다시 꿈꾸는 DMZ〉, 2022, 천에 터프팅 된 오간자 리본, 114.3 × 127 cm, 작가 제공
〈아이소트리아 메데올로지, 다시 꿈꾸는 DMZ〉는 비무장지대의 자연이 보존된 곳에서 자라는 난초를 우연히 발견하고 관찰한 작업입니다. 작가는 2022년 고성의 DMZ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서식하는 동식물을 보았습니다. 이 난초들은 비무장화된 지역에서 사람의 접근이 거의 허용되지 않는 곳에 번식하고 있기에 과거와 미래에도 계속해서 살아갈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이 한국에 개입하여 남긴 유산과 자연의 야생성과 아름다움 사이의 변증법들로 위기 속에서 묘한 기회를 만들어 낸 것과 같습니다.
성립 Seonglib
성립(b.1991)은 반복된 선으로 완성되는 드로잉 작업을 토대로 종이 위 드로잉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늘 새로운 매체의 사용을 지향합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신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혼』
등의 종이책 일러스트 작업 뿐 아니라 프라다, 골든구스, BMW 등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스틸, 패브릭, 도자 등의 색다른 재료에 입혀지며 매체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2023 파도의 조각들》, 《2020
흩어진 파편들》, 《2019 작-업으로서의 드로잉》 등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흥미가 있다고 말하는 그의 드로잉은
아무도 재현하지 않는 동시에 누구든지 가리킬 수 있습니다.

성립, 〈아래에는〉, 2023, 디지털 드로잉, 15초, 사진: 아인아
DMZ 안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영원하진 않으나 끊임없이 순환합니다. 때때로 자연은 화재 등으로 모두 소실되듯 보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화마의 흔적이 사라지면 다시 새로운 싹을 틔웁니다. DMZ의 자연은 밤과 낮, 그리고 여러 계절을 거치며 자연의 법칙에 따라 무한 재생되고 있습니다. 〈아래에는〉은 이처럼 반복과 변화를 거듭하는 DMZ 자연의 경이로움을 드로잉과 영상으로 선보입니다. 흙 아래에서 식물들은 뿌리가 뒤엉켜 군집을 이루며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고, 또 새로운 종자를 만들기도 하고, 생태계를 유지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토모코 요네다 Tomoko Yoneda
일본 효고현 출생인 토모코 요네다(b.1965)는 현재 런던에 거주하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작업은 사람들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 장소들에서 시작합니다. 그녀는 사진을 통해 역사적인 사실이 내재된 특정한
장소와 사물들을 탐구하고, 각 장면 이면의 기억을 상기시킵니다. 대표 전시로는 《세계 교실》(모리 미술관,도쿄, 2023), 《에코 - 부서지는 파도》(슈고아츠, 도쿄, 2022), 《토모코 요네다》(마프레 재단,
마드리드, 2021), 제21회 상하이 비엔날레(상하이, 중국, 2018-2019),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서울, 2014), 제10회 광주비엔날레(광주, 한국, 2014), 《우리는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날
것이오》(히메지 시립미술관, 효고, 일본, 2014 / 도쿄 사진 미술관, 도쿄, 2013), 제52회 베니스비엔날레(베니스, 이탈리아, 2007) 등이 있습니다.

토모코 요네다, 〈일제강점기 얼음 창고 외벽의 폭격 흔적(DMZ인근의 철원, 대한민국, 한국전쟁터)〉, 2015, 크로모제닉 프린트, 65×83cm, 작가 및 Shugo Arts 제공
한반도를 가르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약 4km에 걸친 DMZ에는 다수의 지뢰가 매장되어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됩니다. DMZ는 국경이 아닌 1953년 7월 27일 발효된 한국전쟁 휴전협정에 따라 생긴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기에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한반도가 전시 중임을 인지시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DMZ는 야생동식물의 독자적인 생태계가 형성된 평화로운 자연 낙원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일제로부터 해방 독립한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냉전 시대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초토화되었습니다. 하나로 이어진 땅과 사람을 둘로 나눈 이 비무장지대 주변에는 인간이 그은 경계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태양과 하늘 아래 온화한 꽃들이 피어납니다. 꽃, 풀, 그리고 나무들은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또 저항하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경계와 이데올로기적 개념이 없는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떠돌아다닙니다. 이는 동시에 개인이라는 작은 존재가 국가, 사회, 종교 등 큰 집단에 편입되어 운명에 휘둘리는 모습을 비추고 있습니다.
조경진/조혜령 Kyung Jin Zoh/Hye Ryeong Cho
조경진(b.1961)은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설계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0년부터 철원의 공간기획, 경관 연구 및 DMZ 전망대 답사를 바탕으로 전시기획 및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The
observatory project〉으로 《Facing North Korea》(마인 블라우, 베를린, 2018), 〈DMZ botanic garden〉으로 《경계협상》(런던, 2019 / 파리, 2020),
〈Mine Flower〉로 《오차범위》(요하네스버그, 남아프리카공화국, 2021), 광주디자인비엔날레(광주, 2021) 등 전시에 참여하였습니다. 조혜령(b.1981)은 정원이 갖는 문화적·사회적 가치를 믿으며
이론과 실무의 경계를 탐색하는 조경가입니다. 순천국제정원박람회에 〈물을 담는 큰그릇〉(2013), 〈어느선비의 느린정원〉(2013), 북미지역 가든쇼인 Reford Garden Festival에
〈콘가든복실〉(2014) 등 정원작품을 출품하였으며, 서울식물원 개원기념 전시 《식물탐험대》(2019), 《식물극장》(2020)을 기획하고 실행했습니다. 현재, 조경설계사무실 '조경하다열음'에서 소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조경진/조혜령, 〈식물 평행세계〉, 2023, 싱글채널 비디오, 사운드, 4분 13초, 작가 제공
식물은 비정치적 존재입니다. 현재 남한과 북한은 절반 이상의 식물을 다르게 부르고 있습니다. 같은 종이지만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식물들로 하나의 정원을 만듭니다. 22종의 식물로 만들어 내는 집합적 풍경은 평행세계를 이룹니다.
식물리스트 (남한명-북한명. 학명)
산사나무-찔광나무. Crataegus pinnatifida
수수꽃다리-넓은잎정향나무. Syringa oblata Lindl. var. dilatata
고광나무-조선산매화. Philadelphus schrenkii
귀룽나무-구름나무. Prunus padus L.
함박꽃나무-목란 Magnolia sieboldii
백당나무-접시꽃나무. Viburnum opulus L.
회양목-고양나무. Buxus microphylla var. koreana
쥐똥나무-검정알나무. Ligustrum obtusifolium
쑥부쟁이-푸른산국. Aster yomena
냉초-숨위나물. Veronicastrum sibiricum
부처꽃-두렁꽃. Lythrum anceps
산박하-깨잎오리방풀. Isodon inflexus
벼룩이울타리-긴잎모래별꽃. Eremogone juncea
산국-기린국화. Chrysanthemum lavanduliofolium
큰꿩의다리-잔가락풀. Thalictrum kemense
노루오줌-노루풀. Astilbe chinensis
배초향-방아풀. Agastache rugosa
용담-초룡담. Gentiana scabra
까치수염-꽃고리풀. Lysimachia barystachys
도깨비부채-수레부채. Rodgersia podophylla
마타리-맛타리. Patrinia scabiosifolia
실새풀-새풀. Calamagrostis arundinacea
도움을 주신분들 Volunteers
손정희 Son Jung Hee, 이애경 Lee Ae Kyung, 김이경 Kim Lee Kyung, 정은하 Jung Eun Ha, 김명윤 Kim Myuoung Yoon
* 〈식물 평행세계〉는 파주 캠프그리브스에 전시를 위해 설치된 정원이다.
이끼바위쿠르르 ikkibawiKrrr
이끼바위쿠르르(2021년 결성)는 시각 연구 밴드이며, 현재 구성원은 고결, 김중원, 조지은입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식물, 자연현상, 인류, 생태학과의 연계를 탐구합니다. ‘이끼바위’는 이끼가 덮인 바위, moss
rock을 의미하며, ‘쿠르르’는 일종의 의성어입니다. 이끼는 대기와 흙의 경계층에서 작은 몸으로 적응하며, 주변 환경에 따라 그 세계를 확장 시킵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이끼가 살아가는 방식을 프로젝트와 태도에
적용하고자 하며, 열대와 해초를 연구하며, 또한 농부들과 같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방식이 움직임의 일부가 되어 그 경계층을 넓힌다는 의미는 이끼바위쿠르르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이주’라는 큰 개념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정치 사회적 맥락을 넘어, 식물과 공동체, 그리고 지구 구성원 모두의 시간성에 대해서 탐구합니다. 주요 참여 전시로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광주, 한국, 2023), 도큐멘타 15(카셀, 독일, 2022), 《땅 밑 달리기》 (엘리펀트스페이스, 서울, 2022), 《Resbakan: Solidarity Event Lumbung FILM》 (UP
Film Institute,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Diliman, Quezon City, 2022), 《수원공공예술 도시충;동 예술충;동》 (문화도시 수원, 수원문화재단, 2021)
등이 있습니다.

이끼바위쿠르르, 〈덩굴: 경계와 흔적〉, 2023, 식물, 캔버스 위에 아크릴, 160 × 1800 cm, 〈덩굴: 경계와 흔적〉을 위한 이미지, 작가 제공
이끼바위쿠르르는 DMZ 일대 식물을 채집하여 그것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구성을 한 그래피티 작품을 벽면에 선보입니다. DMZ는 사람이 일상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곳인 동시에 식물들의 자생이 가능한 역설로 잠식된 공간입니다. 이곳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기에 인식하지 못하는, 숨겨진 공간, 일종의 어떤 '틈'과 같습니다. 긴장의 공간임과 동시에 완충지대인 역할을 하는 이곳에서 식물은 허용된 침입자입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파고드는 덩굴들의 흔적을 기록하는 동시에 이 공간에 대한 애도의 의미를 담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임민욱 Minouk Lim
임민욱(b.1968)은 1995년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2008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첫 개인전 《임민욱: 점프 컷》을 가진 후, 워커아트센터의 《그림자 열기》(2012),
플라토 삼성미술관의 《만일의 약속》(2015), DAAD갤러리의 《뉴타운 고스트 家家戶戶》(2017) 등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현실과 중층적 관계를 맺는 혼종적 장르 형식을 주로 선보여 왔으며 첨예한 정치적 맥락을
도전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시적 내러티브와 결합한 고유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리버풀, 이스탄불, 시드니, 타이페이, 광주, 부산비엔날레 등에 참여하였고 에르메스 미술상, 올해의 작가상, 로버트 라우센버그
레지던시, DAAD레지던시 기금 등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임민욱,〈커레히 - 홀로 서서〉, 2023, 36장 군용모포, 아크릴 물감, 페인트 스프레이, 가변설치, 사진: 아인아
‘커레히’는 체로키어로 ‘홀로 서다’ ‘홀로 버틴다’라는 뜻이자 캠프그리브스에 주둔했던 미2사단 506연대의 모토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의 낙하산 보병을 훈련하던 506연대는 조지아주 커레히 산 근방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국내 주둔한 가장 오래된 미군기지 가운데 하나였던 캠프그리브스의 체육관 시설에는 총 36장의 군용 모포가 높은 천장으로부터 낙하산처럼 걸려 있습니다. 군용 모포는 혹독한 훈련과 참혹한 전장 속에서도 잠시나마 의지할 수 있는 안전과 평화의 영역이어야 합니다. 작품에 사용된 군용 모포의 앞면에는 간혹 국군 이름과 물감이 배어 나온 흔적들이 있고, 이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형상들이 떠 있습니다. 허공에 떠 있는 모포들은 꿈처럼 해석이 불가능하고 피아 구분이 불가능한 경계를 보입니다. 군대는 몸과 생각 등이 훈육되는 장소이지만, 잠은 연대 없이, 이념 없이, 목적 없이 다가옵니다. 〈커레히-홀로 서서〉는 통제된 DMZ를, 통제를 벗어난 영토로 그리고 있습니다. 잠은 정복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키코 쿠도 Makiko Kudo
마키코 쿠도(b.1978)은 일본 아오모리에서 태어나 조시비 미술 디자인 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습니다. 그는 현재 일본 가나자와에서 거주하며 예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개인전은 《꽃 피는 것을 보고 그것이
쭉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처럼》(히라츠카 미술관, 가나가와현, 일본, 2002), 《그림자의 색》 (토미오 고야마 갤러리 텐노즈, 도쿄, 2022)가 있으며 이외에도 런던과 코펜하겐에서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하노버 미술관, 로스앤젤러스 미술관, UC 버클리 미술관 및 퍼시픽 필름 아카이브, 얼스터 미술관, 북아일랜드 국립 박물관과 벨파스트가 소장하고 있습니다.

마키코 쿠도,〈같은 추억〉, 2023, Oil on canvas, 162 × 260 cm (2 패널), 토미코 코야마 갤러리 및 작가 제공
마키코 쿠도는 DMZ에 방문하여 본인이 경험하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같은 추억〉을 그렸습니다. 작가가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한 DMZ는 날씨의 영향으로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안개로 인해 흐렸던 그날의 풍경은 작가가 DMZ에 오기 전 그 장소와 그 나라의 정세에 대해서 고찰하며 느꼈던 것과 닮아 있었습니다. 낯선 그곳에서 야생 산딸기와 오디를 먹어보고 처음 보는 새가 철조망 위에 앉아 쉬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릴 적 친구들과 같이 놀았던 기억을 회상하였습니다. 그 어느 날 한국과 북한의 아이들도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직접 눈에 담은 DMZ의 풍경과 작가의 기억을 겹쳐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하였습니다.
써니킴 Sunny Kim
써니킴(b. 1969)은 뉴욕 쿠퍼유니온 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뉴욕 헌터 대학원에서 종합매체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이중의 정체성을 통해 현실화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 파편화된 기억의
이미지들을 회화의 형식으로 재현합니다. 나탈리 카그 갤러리, 뷰잉룸(뉴욕, 2021), 에이라운지(서울, 2020), 인천아트플랫폼 극장(인천, 2014), 스페이스 비엠(서울, 2013), 갤러리현대
16번지(서울, 2010), 일민미술관(서울, 2006) 등의 개인전을 가졌고 국립현대미술관(서울, 2021), 아트센터 화이트블럭(파주, 2019), 런던 A.P.T(런던, 2018),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서울, 2017), 문화역서울 284(서울, 2012), 비엔나 쿤스트할레(비엔나, 2007), 서울시립미술관(서울, 2007)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였습니다. 현재 서울과 뉴욕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써니킴,〈선〉, 2013, 리넨에 아크릴, 111 × 134 cm, 작가 제공
써니킴의 회화는 기억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을 한 화면에 구성하여 그림 너머 상상의 세계를 구현합니다. 그의 회화가 지닌 불분명한 경계와 익숙하지만 낯선 이미지들은 작가가 만들어 내는 완벽한 이미지임과 동시에 다양한 내러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에 등장하는 풍경은 어딘가 본 듯한 익숙하지만 정확하게 어디라고 부를 수 없는 곳입니다. 어디부터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없는 강물과 어디에서 보았을 법한 산은 사실 명확하게 실재하지 않는 구역인 DMZ의 어느 지점과 같습니다. 〈벼랑〉에서는 옛날 교복을 입은 소녀는 아무도 없는 생경한 풍경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소녀를 통하여 우리는 DMZ의 흘러가 버린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또 불확실한 미래 시간들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에서는 보다 불분명한 경계로 속도감이 느껴지는 불안한 풍경을 표현하였습니다. 이곳은 작가가 중국도, 북한도 아닌 두만강의 어느 지점을 바라보고 그렸습니다. 작가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에서 느낀 수많은 감정을 표현한 이 그림은 실재하는 풍경이자 작가가 느낀 감각의 풍경입니다.
박노완 Noh-wan Park
박노완(b.1987)은 회화를 주로 제작하며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를 수료하였습니다. 박노완은 주변에서 마주친 풍경이나 사물의 모습을 사진으로
수집하고 이를 소재로 삼아 회화를 제작합니다. 세상과 불화한 듯 보이는 사물들의 모습을 회화의 조형 조건 안에서 다시 한번 가공하여 표현합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싱거운 제스처들》(공간 가변크기, 서울,
2018), 《사람 얼룩》(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1), 《텅 빈 주머니를 헤집기》(갤러리 기체, 서울, 2022)이 있으며, 《가볍고 투명한: Light and crystalline》(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2020), 《박노완-전현선》(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0), 《You never saw it》(갤러리 기체, 서울, 2021), 《SOLO SHOW : 신∙세계 백∙화점(新∙世界 百∙畵店)》(부산
신세계 백화점,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부산, 2021), 《프레카리오 시티》(공간 카다로그, 서울, 2023) 등의 단체전에 참여하였습니다.

박노완, 〈동상들〉, 2023, 캔버스에 수채, 200 × 200 cm, 작가 제공
무언가가 오랜 기간 기억하길 바라며 제작되곤 하는 석상은 시간이 지나 환경과 상황이 변화하면서 본래의 의미와는 동떨어져 다르게 보이고는 합니다. 박노완은 DMZ 근방에 존재하는 다양한 돌조각상들을 통해 시간이 흘러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보이고 읽히는 풍경을 마주하였습니다. 작가는 시간과 흐름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본질이 왜곡되는 대상의 형상을 수채물감으로 그리고 다시 닦아내는 기법을 통해 지저분해 보이는 얼룩들로 치환하고 이 표현을 낯설지 않은, 익숙한 풍경으로 연출하였습니다.
이우성 Woosung Lee
이우성(b.1983)은 일상적인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어 오늘날 사회 속 사람들의 초상을 그립니다. 그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2008년 첫 그룹전
참여를 시작으로 아르코미술관(서울, 2020), 서울시립미술관(서울, 2019) 등 한국 주요 국공립 미술관에서 전시를 해왔습니다. 동시에 커먼센터(서울, 2014), 아트 스페이스 풀(서울, 2015),
아마도예술공간(서울, 2017) 등 한국 주요 대안공간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해외에서는 두산갤러리(뉴욕, 미국, 2016) 웩스포드 아트센터(웩스포드, 아일랜드, 2015)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이우성,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21, 천에 아크릴릭 과슈, 아크릴, 수채, 200 × 410 cm, 리얼디엠지프로젝트 제공
서울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이우성은 2021년 여름 경기도 김포에 자리한 야산인 애기봉에 방문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154고지라고 불리며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던 애기봉은 북한의 해물선전마을과 불과 1.5km의 거리에 자리합니다. 애기봉 앞으로는 한강,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이 모여 서해로 흐르는 마지막 구간인 조강이 자리합니다. 작가는 조강 너머 흐릿하게 보이는 북녘땅을 바라보며 개인으로서 흡수했던 북한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북한 땅 어딘가에 있을 이름 모를 한 사람의 이야기, 특히 정치와 이념의 싸움 속에서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을 겪어야 했을 누군가를 상상했습니다. 작품 제목인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는 작가가 북한에 있을 “그”에게 건네는 인사말입니다. 답사 당시 흐린 날씨 때문에 망원경 렌즈를 통해 겨우 바라보아야 했던 저 너머의 풍경은 밝은 분홍빛 천 위에 더욱 선명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작가는 4미터 너비의 천 위에 그가 보고 상상한 것을 충실히 담아내었습니다.
권혜성 Hyeseong Kwon
권혜성(b.1985)은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입니다. 주로 자연에서 체득한 경험, 물의 움직임, 바람의 흐름 같은 자연적인 현상에서 체득한 것들을 토대로 몸과 기억에 남겨진 인상을 자유롭고 유연한 단색의
선들로 시각화하여 평면 작업을 합니다. 주요 전시로는 개인전 《Back Beat!》(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20), 단체전 《한국화와 동양화와》(Gallery TOWED, 도쿄, 2022 / FINCH ARTS,
교토, 일본, 2022 / 중간지점 둘, 서울, 2022) 등이 있습니다.

권혜성,〈우리는 풀이 되어〉, 2023, 장지에 먹, 아크릴, 분채, 203 × 284 cm, 작가 제공
여행 중에 발견한 아름다운 수풀은 자세히 보니 가족묘였습니다.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다는 연천의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생각났습니다. 실향민들의 묘지(이북 5도민들을 위한) 동화 경모공원을 방문하였고 수많은 무덤 중 유난히 풀이 무성한 곳이 눈에 띄었습니다. 무덤을 자양분으로 삼아 살려는 것과 죽어가는 것이 뒤엉킨 풀들을 덤덤하게 그려 보았습니다. (작가 노트에서 발췌)
옥승철 Ok Seungcheol
옥승철(b.1988)의 회화는 개념화된 이미지의 최초 출력물입니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 내부의 벡터 좌표에서 작업을 시작하며 흥미롭게 지켜보는 이미지는 만화, 영화, 게임 등 화면의 내부에서 변주되고 복제된 디지털
이미지입니다. 원본의 존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복제되고 열화된 디지털 이미지는 캐릭터의 얼굴이라는 구상화의 틀 안에서 합성되고 재해석됩니다. 그에게 회화란 전시 기획과 공간에 맞추어 크기와 목적을 달리한 3차원
오브젝트로 전환 가능한 시작점으로서의 원화입니다. 옥승철은 캔버스와 물감이라는 기성 양식으로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절대적 좌표를 출력하고 있습니다. 옥승철은 중앙대학교 서양화과 학부를 졸업했습니다. 개인전은
아트선재센터(2022, 서울), 및 기체(2020, 2018, 서울)가 있습니다. 주요 그룹전으로는 펑크갤러리(2022, 상해), 누크 갤러리(2022, 서울), 대전시립미술관(2021, 대전),
더그레잇컬렉션(2021, 서울), 대구미술관(2019, 대구) 그리고 플랫폼 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2019, 서울) 등이 있습니다.

옥승철, 〈구름〉, 2023, 캔버스에 아크릴, 150 × 120 cm, 작가 제공
〈녹색 광선〉과 〈구름〉은 만화에서 보이는 상징을 선택/편집하는 시리즈입니다. 레이저의 사격, 폭발의 한 장면을 멈춰 놓은 듯한 이미지는 이념, 인종, 폭력, 전쟁 사이의 첨예한 갈등을 표현합니다. 두 회화는 모두 적과 아군,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전혀 드러내지 않도록 편집되었습니다. 다만 DMZ의 맥락에서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과 일시 정지된 우리의 역사가 겹쳐 보이기를 의도했습니다.
성시경 Sikyung Sung
성시경(b.1991)은 서울을 기반으로 회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 예술과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순간적인 즉흥성과 내재된 계획성 사이에서 회화표면에 드러나는
움직임을 탐구합니다. 개인전 《엑시트 엑시트 Exit Exit》 (공간 형/쉬프트, 서울, 2019)를 열었으며, 그룹전 《흰 그림》 (갤러리 팩토리, 서울, 2023) 《썬룸 SUNROOM》 (갤러리 BB&M,
서울, 2023), 《투투 Two 透》 (P21, 휘슬 Whitsle, 서울, 2022), 《물질, 구름》 (아트스페이스3, 서울, 2022), 《룰즈》 (원앤제이 갤러리 ONE AND J. GALLERY, 서울,
2016) 등에 참여했습니다.

성시경,〈오델로〉, 2022-2023, 캔버스에 유채, 116.1 × 91.9 cm, 작가 제공
성시경의 작품은 오래전 중단한 그림을 바탕으로 합니다. 언제 그렸는지, 어떤 생각과 감정에서 멈췄는지 기억이 잊힐 정도로 시간이 지난 캔버스를 다시 마주했을 때 떠오르는 상상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성시경은 그림이 중단되었던 시간을 단절된 시간이 아닌 연속적인, 숙성의 시간으로 받아들입니다. 작가는 캔버스에 구체적으로 물감이 올라가는 방식, 순서에 따라 선과 면의 경계가 계속해서 뒤바뀌는 화법을 구성합니다. ‘오델로’라는 보드게임은 그의 기법과 유사합니다. 녹색의 격자무늬 판 위에 흑색 돌이 앞과 뒤로 놓이면 가운데 백색 돌이 전부 흑색 돌로 변화하는 법칙에 비유한 그의 화법은 점, 선과 면이 상대적으로 구성되고 변화하며 채워집니다. 성시경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유동성은, 오늘날 DMZ의 정지된 듯한 풍경 이면에 다양한 사건과 세계정세에 맞추어 시시각각 변화하는 분위기, 모습과 비견됩니다.
토모코 요네다 Tomoko Yoneda
일본 효고현 출생인 토모코 요네다(b.1965)는 현재 런던에 거주하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작업은 사람들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 장소들에서 시작합니다. 그녀는 사진을 통해 역사적인 사실이 내재된 특정한
장소와 사물들을 탐구하고, 각 장면 이면의 기억을 상기시킵니다. 대표 전시로는 《세계 교실》(모리 미술관,도쿄, 2023), 《에코 - 부서지는 파도》(슈고아츠, 도쿄, 2022), 《토모코 요네다》(마프레 재단,
마드리드, 2021), 제21회 상하이 비엔날레(상하이, 중국, 2018-2019),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서울, 2014), 제10회 광주비엔날레(광주, 한국, 2014), 《우리는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날
것이오》(히메지 시립미술관, 효고, 일본, 2014 / 도쿄 사진 미술관, 도쿄, 2013), 제52회 베니스비엔날레(베니스, 이탈리아, 2007) 등이 있습니다.

토모코 요네다, 〈얽힌 철조망과 꽃 II(DMZ인근의 철원, 대한민국)〉, 2015/2023, 철구조물, 나무판넬, 천에 UV 프린트, 300 × 234.9 cm, 작가 및 Shugo Arts 제공
한반도를 가르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약 4km에 걸친 DMZ에는 다수의 지뢰가 매장되어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됩니다. DMZ는 국경이 아닌 1953년 7월 27일 발효된 한국전쟁 휴전협정에 따라 생긴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기에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한반도가 전시 중임을 인지시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DMZ는 야생동식물의 독자적인 생태계가 형성된 평화로운 자연 낙원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일제로부터 해방 독립한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냉전 시대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초토화되었습니다. 하나로 이어진 땅과 사람을 둘로 나눈 이 비무장지대 주변에는 인간이 그은 경계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태양과 하늘 아래 온화한 꽃들이 피어납니다. 꽃, 풀, 그리고 나무들은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또 저항하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경계와 이데올로기적 개념이 없는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떠돌아다닙니다. 이는 동시에 개인이라는 작은 존재가 국가, 사회, 종교 등 큰 집단에 편입되어 운명에 휘둘리는 모습을 비추고 있습니다.
임진강 평화습지원
최원준 Che Onejoon
최원준(b.1979)은 한국 분단 문제를 다룬 사진 작업을 시작으로 북한과 아프리카의 외교관계에서 나온 다양한 사례들을 연구하며 사진, 영화, 설치미술을 발표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관계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며 동두천에서 스페이스 아프로아시아를 운영 중입니다. 주요 개인전으로 《캐피탈 블랙》(학고재 갤러리 2022), 《인포메이션》(신도문화공간 2015) 등이 있으며 자카르타 비엔날레 2021, 루붐바시
비엔날레 2019, 부산 비엔날레 2018, 뉴 뮤지엄 트리엔날레 2015,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 2014 등 다수의 국제전시에 참여해 왔습니다. 주요 수상으로는 신도미술상, 프랑스 국립 케 브랑리 미술관의
사진상, 일우사진상이 있습니다. 주요 펠로우 쉽은 팔레 드 도쿄 미술관 르 파비용 2011, 파울 클레 여름 아카데미 2013, 라익스 아카데미 프로그램 2017-2018 등이 있습니다.

최원준,〈언더쿨드 - 은평구 뉴타운#1, 구파발, 2007〉, 2023, 디지털 UV 프린트, 200 × 280 cm, 작가 제공
1968년 김신조 간첩 사건 이후 경기 북부에 건설된 군사시설들은 도시와 자연 속에서 자신을 위장하며 보는 이에게는 일종의 허구적 파사드를 드러냅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위장된 군사시설은 경제발전의 욕망 아래 조금씩 사라지는 중입니다. 서울 도시개발의 대표 격인 뉴타운 사업이 시행되는 2008년의 은평 뉴타운 공사 현장에서 마치 유물 발굴의 현장처럼 땅을 파고 산을 깎을수록 감춰져 있던 군사시설물의 내부 구조가 드러났습니다. 뉴타운이라는 부동산에 대한 욕망과 맞물려 하나둘 사라져가는 군사 유물들은 대북 정책에 대한 정치, 사회적 변화를 나타내는 하나의 단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풍경은 국가 안보를 뛰어넘는 경제 논리를 증명하며,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 부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안보의 논리를 앞장서는 욕망 앞에 사라지는 군사시설들은 소명을 다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사라지며 냉전의 종식을 알리는 것 같습니다.
연강갤러리 전시 현장




임진강 평화습지원 전시 현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