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전시:체크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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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전시:체크포인트
- 경기도 DMZ 일대에서 현대 미술 전시 《DMZ 전시 : 체크포인트》를 개최합니다. 1부와 2부로 나뉘어 파주와 연천 두 지역에서 진행되는 본 전시는 8~9월에는 파주에서, 10~11월은 연천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 연강갤러리 관련
- 민간인 통제구역에 있어 방문 시 신분증 지참(모바일 신분증 앱도 가능)
- 개인관광은 당일 방문 가능, 단체관광은 7일 전 방문자 명단 작성&제출 (연천군청 문화체육과 031-839-2141)
- 매주 화요일 휴무
- 일정
- 2023. 8. 31. ~ 2023. 11. 5.
- 장소
- [파주] 도라전망대, 캠프그리브스, 임진각 평화누리 [연천] 연강갤러리, 경원선 미술관
《DMZ 전시: 체크포인트》 기획의 글
전시 큐레이터 김선정

올해는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이 멈춘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이 만든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 남과 북의 군사분계선에서 2km씩 떨어진 공간으로 총길이는 248km, 155mile에 달한다)는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는 군인들만의 공간이 되었고 이런 상태로 70년이 되었습니다. 70년간의 세월은 디엠지를 자연과 생태의 중요한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DMZ 전시: 체크포인트》1)는 남과 북의 경계와 분단으로 인해 만들어진 현상을 동시대 예술의 시각으로 고민하고 DMZ의 장소성과 역사, 분단의 의미를 환기하는 전시입니다. 한국전쟁, 남북분단과 DMZ에 대한 고찰은 역사와 정치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경계에서 만들어진 사회적 현상과 트라우마를 예술가들이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자유롭고 열린 시선으로 DMZ에 접근하고, 경계를 넘나들며, 때로는 거리를 두고 낯설게 보기를 시도하거나 추상적으로 접근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번 전시는 70년의 분단에서 비롯된 DMZ의 자연환경과 생태에 대한 접근을 새롭게 시도하는 한편 분단에서 비롯된 군사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기도 합니다. 유보된 비무장지대인 DMZ는 인간의 움직임은 사라지고 동식물만이 활동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DMZ 전시: 체크포인트》는 DMZ의 자연과 주위에 남겨진 군인들의 공간을 전시 장소로 사용함으로써 현재 남겨진 DMZ의 모습을 예술적 시각에서 조명하고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군인들의 공간을 예술적 공간으로 전환합니다.
《DMZ 전시: 체크포인트》는 8월 31일부터 9월 23일까지 경기도 파주의 민간인 통제 구역인 도라전망대와 미군기지였던 캠프그리브스 그리고 전쟁 중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방문했던 임진각에 있는 평화누리에서 열립니다. 이어서 10월 6일부터 11월 5일까지는 연천의 민간인 통제 구역 마을에 있는 전시 공간인 연강갤러리와 임진강 평화습지원, 미군이 세운 피난민 정착촌에 지어진 신망리역,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북으로 향하던 간이역인 대광리역과 신탄리역에서 전시가 진행됩니다. 이번 전시 장소들은 남북 분단 이전에 북으로 향하던 역, 북을 볼 수 있는 전망대,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했던 캠프, 민간인 통제 구역 안의 마을 입구 등 70년간의 남북분단으로 인해 만들지거나 남겨진 장소들입니다.
김선정은 아트선재센터에서 수석 큐레이터 겸 부관장(1993-2004), 관장(2016-2017)을 지냈고, 현재
예술감독(2022-)이며,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한국위원회 위원장 및 ICOM ASPAC(아시아태평양지역협의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4-2015년 아시아문화예술회관 ACC
아카이브&리서치 예술감독, 2017-2021년 광주비엔날레 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또한, 2011년부터 미술관의 경계를 넘어 비무장지대(DMZ)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예술의 비판적 시각으로
탐구하고 분단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기 위해 시작된 예술 및 연구 프로젝트인 리얼디엠지프로젝트의 설립자이며 예술감독을 역임하고 있다.
각주
1) ‘체크포인트’는 점검과 검문을 위한 시설을 의미하며 접경지역에서는 보안을 위한 인적 사항과 방문목적을 확인하는 절차적 장소이다. 비무장지대인 DMZ는 민간인의 접근이 불가능하고
민간인 통제
구역만이 미리 허가를 받는
조건에서 일반인의 방문이 가능하다.
제1부: 파주
도라전망대
평화관광 코스 중 하나인 도라전망대는 DMZ뿐 아니라 북의 기정동 선전마을과 개성까지도 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DMZ는 남과 북의 대치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군인들만
남아
있기 때문에 자연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도라전망대의 전시는 식물이나 자연으로 가득 찬 DMZ의 실제 풍경을 다루거나 이런 풍경이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질문을 던지는 작업으로 구성됩니다. 전망대
입구에
놓인 정소영의 조각 〈환상통〉은 사라진 신체 부위에서 느끼는 환상통처럼 일상에서 사라진 부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DMZ는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숨겨진 공간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동시에 완화되는 완충
지대이기도
합니다. 일종의 ‘틈’과 같은 공간인 DMZ에서 식물은 허용된 침입자입니다. 전망대 1층에서 볼 수 있는 이끼바위쿠르르의 그라피티 작업은 DMZ에 파고드는 덩굴들의 흔적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구성하여 식물이
잠식한
공간에 대한 기록이자 사라진 인간에 대한 애도의 의미를 담습니다. 만화에 나타나는 상징을 선택/편집한 옥승철의 〈녹색광선〉과 〈구름〉은 레이저 사격이나 폭발의 한 장면을 멈춰 놓은 듯한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옥승철은
적과 아군,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전혀 드러내지 않도록 이미지를 편집함으로써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과 일시 정지된 우리의 역사가 겹쳐 보이도록 합니다. 2004년, 2006년과 2015년에 파주와 철원의
DMZ
모습을 담은 토모코 요네다의 사진 작업과 군 복무 경험을 텐트 이미지로 표현한 이재석의 회화 또한 전망대 1층에 전시됩니다. 김포에 위치한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선전마을의 모습을 그린 이우성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전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는 북에 인사를 건네는 방식으로, 전망대에서 바라본 DMZ의 스펙터클한 풍경을 인공적인 향으로 표현한 박보마의 작업과 DMZ에서 자라는 식물의 드로잉과 애니메이션을
만든
성립의 작업이 DMZ 전망대 2층에 설치됩니다. 그리고 킴 웨스트팔의 DMZ에서 발견한 난초의 이미지를 태피스트리 기법으로 만든 〈석곡, 다시 꿈꾸는 DMZ〉와 〈아이소트리아 메데올로지스, 다시 꿈꾸는
DMZ〉도
전망대 2층에 설치됩니다.
캠프그리브스
미군의 군사 시설이었던 캠프그리브스는 한국전쟁과 정전협정 당시의 자료와 함께 미군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번 전시는 군인 막사들에 전시되어 있던 기존의 기록과 자료, 사진 사이에 작가들의 작업이 끼어들어 가는 형식으로 구성됩니다. 군인 막사였던 ‘도큐멘타1’는 정전협정 관련 자료와 미군 사진들이 상설 전시되어 있습니다. 기존의 화장실 공간이었던 ‘도큐멘타2’에서는 위장 개념과 JSA의 배수구를 소재로 한 혜안폴권카잔더의 작업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미군의 군 생활 사진들을 볼 수 있는 ‘도큐멘타3’에는 동두천 미군클럽의 현재 모습을 다룬 최원준의 〈미군 기지촌 클럽에 대한 작은 역사〉 연작이 소개되고, 미군이 살았던 모습을 재현한 전시관에는 킴 웨스트팔의 레코드 작업 〈스파이시 메모리〉가 전시됩니다. ‘도큐멘타4’에서는 DMZ를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한 나미라의 비디오 설치 작업 〈밤시각〉을 볼 수 있습니다. 보존 막사에는 DMZ 안 민간인 마을인 ‘자유의 마을’에 대해 다룬 문경원&전준호의 비디오와 설치 작업이 소개됩니다.
체육관에는 DMZ의 역사성을 다룬 작업과 DMZ의 풍경을 개인적인 감상 혹은 만화적으로 혹은 추상적으로 접근한 작업이 평행하게 배치됩니다. 체육관 메인 공간에서는 남북의 갈등을 다룬 서용선의 남북의 갈등을 보이는 회화 두 점이 전시됩니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의 식량 파동과 미사일 발사 및 핵 개발로 인해 남북한 긴장 관계가 최고조일 때 그린 〈뉴스와 사건〉과 2005년에 남과 북의 감시 체제와 DMZ의 공포와 긴장을 담은 〈시선〉이 소개됩니다. 또한, 군대의 계급을 표시하는 별들이 달린 군용 텐트와 어두운 벙커를 그린 이재석의 〈오성텐트〉와 〈쉘터_2〉, 개성 공단의 폐쇄로 한국 기업들이 집단 탈출했던 기록을 재해석한 함경아의 〈리프린트된 시차 17시와 17시30 분 사이, 예시 2-1〉 작업 등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군인들이 사용했던 36장의 군용 모포로 만들어진 임민욱의 설치 작업 〈커레히―홀로서서〉도1) 만나볼 수 있습니다. 천장에 매달린 모포들의 앞면에는 간혹 군인들의 이름이나 물감이 배어 나온 흔적이 있고, 반대 면에는 형태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형상들이 떠올라 있습니다. 장수미의 현대무용 작업인 〈오블리끄 센세이션〉은 사용이 중지된 공간에 간헐적인 움직임으로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습니다.
체육관의 사우나실 공간에는 연천의 태풍전망대를 방문하고 그린 마키코 쿠도의 〈같은 추억〉, 초록이 우거진 DMZ의 땅에서 느낀 감정을 그린 박형진의 〈나무 한 그루를 심고 기다리는 이〉, 중단된 그림을 다시 그리는 작업을 통해 멈추었던 시간을 단절이 아닌 모습으로 표현한 성시경의 〈여러 입구들〉과 〈오델로〉, DMZ의 마을과 역사 주변에서 발견한 석상과 동상을 그린 박노완의 〈석상과 거북이 장난감〉과 〈동상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연천과 파주를 지금의 아름다운 풍경으로서 무성한 풀로 나타낸 권혜성의 〈우리는 풀이 되어〉 등이 소개됩니다. 흐릿한 풍경을 통해 모호하고 속도감이 느껴지는 써니킴의 회화 〈이곳에서〉, 〈벼랑〉, 〈선〉은 탈북 루트를 따라 작가가 방문했던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에 대한 작업으로, 체육관의 교육실과 복도로 이어지고, 복도 공간에는 DMZ 안의 수풀, 철책, 지뢰 표지판 등을 포착해 접경지역의 풍광을 표현한 미카엘 레빈의 작업등이 DMZ의 다층적인 기억을 상기시킵니다. 야외 공간에는 움직이고 싶지만 움직일 수 없는 다리 사이에는 여러 겹의 철조망으로 묶여 있는 이정훈의 조각 〈금지된 걸음〉이 놓입니다. 조경진/조혜령은 남과 북이 다르게 부르는 DMZ의 식물의 이름을 조사하고 그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식물로 조그만 정원 〈식물 평행세계〉를 조성하였습니다.
각주
2) ‘커레히’는 체로키어로 ‘홀로 서다,’ ‘홀로 버틴다’라는 뜻이다. 이는 캠프그리브스에 주둔했던 미 2사단 506연대의 모토이기도 하다.
임진각 평화누리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이 명절 때마다 고향을 그리며 방문하던 임진각이 이제는 평화누리로 확장되어 일반인이 방문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북의 침략에 대비한 방호벽은 70여 년간의 세월로 원래의 기능을 잃고 지금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사라지는 군사 시설과 위장한 모습을 담은 최원준의 사진 〈언더쿨드〉 연작과 수풀과 철책, 그 위에 ‘지뢰’라고 쓰인 모습을 찍은 토모코 요네다의 사진 〈지뢰 - DMZ I〉은 빌보드처럼 제작되어 평화광장 잔디에 놓입니다. 김홍석의 〈불완전한 질서 개발 - 회색 만남〉은 원래는 무겁고 단단한 재질의 조각인데 가벼운 재료로 바꿔 떠 있듯이 잔디밭에 설치됩니다. 가볍지만 무거운 의미를 지닌 이 거대한 조각은 집단적으로 형성된 체계나 동의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2부: 연천
※ 10.6 ~ 11.5 매주 화요일 휴관
연천의 전시는 장소가 파주보다 작아 작업이 달라지고 전시장에 따라 새로운 작업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일제시대에 남과 북을 연결했던 경원선의 간이역인 신탄리역, 대광리역, 신망리역은 24시간 개방이 되어야 합니다. 이에, 대광리역과 신탄리역에는 사진 작업을 크게 천에 뽑아 전시를 하고 신망리역에는 페인트를 사용한 설치를, 그리고 연강 갤러리에는 캠프그리브스와 도라전망대에서 전시했던 작업들이 재조합되어 전시됩니다.
연강갤러리
체크포인트를 지나 태풍전망대 가는 중간쯤에 위치한 연강 갤러리는 민간인 통제 구역 마을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경기문화재단에서 전시장으로 조성하여 연천군 작가의 전시를 위해 사용하던 공간입니다. 전시장 밖, 야외에는 에코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연강갤러리에 들어서면 음악 소리를 접하게 됩니다. 킴 웨스트팔의 레코드 작업 〈스파이시 메모리〉가 전시장 입구에서 소리로 관객을 맞이합니다. 1층 전시장 왼쪽 벽에서 서용선의 〈전쟁과 여인〉과 이재석의 〈오성텐트〉를 볼 수 있습니다. 〈전쟁과 여인〉은 남편을 잃고 평생을 산 부녀자의 모습, 즉 전쟁 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쟁으로 인한 죽음이 산 사람들에게 남긴 트라우마와 고통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이번 연천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입니다. 파주에 전시되었던 이재석의 여러 작업 중 〈오성텐트〉는 전시장 입구에 설치됩니다. 전시장 중간에는 임민욱의 작업 〈커레히 - 홀로서서〉가 작은 규모로 설치됩니다. 전시장의 오른쪽 벽에는 이끼바위쿠르르의 〈덩굴: 경계와 흔적〉이, 전시장 안쪽에는 조경진/조혜령의 남북의 부르는 이름이 다른 식물을 보여주는 영상작업과 성립의 디엠지 식물을 그린 애니메이션, 킴 웨스트팔의 디엠지에서 발견한 난초를 태피스트리 기법으로 만든 〈아이소트리아 메데올로지스, 다시 꿈꾸는 DMZ〉가 놓입니다. 2층 전시장에는 써니킴, 권혜성, 마키코 쿠도, 박노완, 성시경, 이우성의 작업이 재구성됩니다. 전시장의 바깥 공간에는 정소영의 조각 〈환상통〉이, 그리고 임진강 평화습지원의 수풀 사이에는 최원준의 〈언더쿨드〉 시리즈와 토모코 요네다의 사진 〈지뢰 - DMZ I〉가 산책길을 따라 설치됩니다.
경원선 미술관
미군이 세운 피난민 정착촌에 지어진 신망리역,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간이역인 대광리역과 신탄리역에는 매 역마다 한 작가의 작업이 놓입니다. 신망리역에는 성시경이 팔레트로 사용한 판을 이용한 설치 작업이, 대광리역에는 최원준의 사진 작업인 〈전쟁 부조〉와 〈언더쿨드〉 시리즈가 설치됩니다. 한국 전쟁 관련 기념비 중 부조로 만들어진 것들을 사진으로 찍은 〈전쟁 부조〉 시리즈는 전쟁의 모습을 촬영한 후 탁본의 결과물처럼 보이도록 음영을 만든 작업입니다. 고대산으로 가는 신탄리역에는 토모코 요네다가 찍은 디엠지의 식물 사진들이 크게 천에 프린트되어 걸립니다.
맺는말
《DMZ 전시: 체크포인트》는 70년간의 남북분단으로 생겨난 여러 장소를 연결하여 전시 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관람객이 각각의 장소들을 방문해 전시를 관람하면서 장소에 깃든 역사적 의미들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합니다. 마치 게임에서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여 특별한 아이템을 얻는 것처럼 분단이 만들어 낸 장소들을 방문해 다채로운 예술 작업들을 감상하면서 남북분단 70년의 세월을 되새겨보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DMZ 전시: 체크포인트》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장소인 DMZ를 예술가의 또 다른 시각을 통해 바라봄으로써 우리 가까이에 존재하지만 잊어버리고 있던 공간, 비무장지대지만 가장 무장화된 역설적인 공간에 대해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상기시킵니다. DMZ를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은 무거운 역사와 정치에 비해 어쩌면 감상적이고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이 가벼움 안에 여러 층위의 생각들과 상상력들이 담겨있어서 어느 곳으로든 날아가 새로운 이야기를 싹 틔울 씨앗처럼 퍼져 나갈 것입니다.
권혜성Hyeseong Kwon
[연천] 연강갤러리 2층[파주] 캠프그리브스 체육관

권혜성,〈우리는 풀이 되어〉, 2023, 장지에 먹, 아크릴, 분채, 203 × 284 cm, 작가 제공
권혜성(b.1985)은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입니다. 주로 자연에서 체득한 경험, 물의 움직임, 바람의 흐름 같은 자연적인 현상에서 체득한 것들을 토대로 몸과 기억에 남겨진 인상을 자유롭고 유연한 단색의 선들로 시각화하여 평면 작업을 합니다. 주요 전시로는 개인전 《Back Beat!》(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20), 단체전 《한국화와 동양화와》(Gallery TOWED, 도쿄, 2022 / FINCH ARTS, 교토, 일본, 2022 / 중간지점 둘, 서울, 2022) 등이 있습니다.
여행 중에 발견한 아름다운 수풀은 자세히 보니 가족묘였습니다.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다는 연천의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생각났습니다. 실향민들의 묘지(이북 5도민들을 위한) 동화 경모공원을 방문하였고 수많은 무덤 중 유난히 풀이 무성한 곳이 눈에 띄었습니다. 무덤을 자양분으로 삼아 살려는 것과 죽어가는 것이 뒤엉킨 풀들을 덤덤하게 그려 보았습니다. (작가 노트에서 발췌)
김홍석Gimhongsok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김홍석, 〈불완전한 질서 개발 - 회색 만남〉 , 2023, 텐트천, 공기 주입형 모터, 500 × 370 × 200 cm, 3D 모델링, 렌더링: 김지원, 작가 제공
김홍석(b. 1964)은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1990년대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수학했습니다. 그는 개념미술가로 알려져 있으며 서구 모더너티의 유입 후 한국의 사회, 정치, 문화적 이슈를 번역과 차용으로 소재화하여, 영상, 퍼포먼스, 설치 등의 매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비판합니다. 그의 작업은 우회적인 비판과 유희를 담아내기도 하며 예술 안의 위계와 노동의 윤리에 대해 고찰합니다. 주요 전시로는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플라토, 아트선재센터, 워커아트센터, 도쿄 모리미술관,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서 작품을 선보였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선재센터, 휴스턴 미술관, 캐나다 국립미술관, 반 아베미술관, 리움, 삼성미술관,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휴스턴 미술관, 호주 퀸즈랜드아트갤러리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완전함을 추구해야 한다던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타당한 논리성이 내포되어야 하거나, 다수를 설득할 수 있는 공통의 개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집단적 합의에 의한 것은 없고, 개인에 의한 자의적 표현만 있습니다. 이 작품은 집단적으로 합의를 이룬 것, 집단에 의해 구축된 개념, 긴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집단적 신념이나 이념 등과 같은 것들의 대척점에 있습니다. 이 작품은 구멍가게같이 존재의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것, 실없는 대화, 요약할 수 없는 주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생각, 악보가 존재한 적이 없으나 언제나 기억이 떠올라 같이 부를 수 있는 아주 긴 노래, 위아래는 있으나 서열이 없는 회사, 삽과 망치로 무장하고 노래로 명령하는 군대, 수식어 없이 표현하는 칭찬, 글자가 그림처럼 보이는 시(詩)와 같은 것입니다.
나미라Na Mira
[파주] 캠프그리브스 도큐멘타

나미라, 〈밤시각〉(스틸 이미지), 2019, 적외선HD 비디오, 홀로그램 아크릴, 컬러, 사운드, 초음파 가습기, 방수팬, 플라스틱 바스켓, 쑥, 은행, 양귀비, 버드나무 잎, 플렌테인, 물, 루프, TRT 14:12, 작가 및 폴 소토 제공
나미라(b.1982)는 미국 로스앤젤러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2년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여하였으며 투싼 현대미술관과 로스앤젤러스의 현대미술 기관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그는 로스앤절레스 주립대학과 시카고 미술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그의 작품은 로스앤젤러스 주립 미술관과 워커 아트센터 그리고 휘트니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밤시각〉은 일제 강점기 무속인으로 살았던 증조할머니와 1990년도에 오토바이를 타고 38선을 넘었던 삼촌에게 영감을 받은 신체의 경계에 대한 명상입니다. 작가는 적외선 야간 카메라로 제주도를 촬영하던 중 장비에 결함이 생겨 과거의 장면이 현재에 반복적으로 나타나 두 세계를 이어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 카메라를 비무장지대로 가져와 그곳에 아직 생존해 있을지도 모를 호랑이를 떠올리는 퍼포먼스를 하였고, 그 결함은 세계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군사 지역을 가로질러 작가를 데려다주었습니다.
마키코 쿠도Makiko Kudo
[연천] 연강갤러리 2층[파주] 캠프그리브스 체육관

마키코 쿠도, 〈같은 추억〉, 2023, Oil on canvas, 162 × 260 cm (2 패널), 토미코 코야마 갤러리 및 작가 제공
마키코 쿠도(b.1978)은 일본 아오모리에서 태어나 조시비 미술 디자인 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습니다. 그는 현재 일본 가나자와에서 거주하며 예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개인전은 《꽃 피는 것을 보고 그것이 쭉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처럼》(히라츠카 미술관, 가나가와현, 일본, 2002), 《그림자의 색》 (토미오 고야마 갤러리 텐노즈, 도쿄, 2022)가 있으며 이외에도 런던과 코펜하겐에서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하노버 미술관, 로스앤젤러스 미술관, UC 버클리 미술관 및 퍼시픽 필름 아카이브, 얼스터 미술관, 북아일랜드 국립 박물관과 벨파스트가 소장하고 있습니다.
마키코 쿠도는 DMZ에 방문하여 본인이 경험하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같은 추억〉을 그렸습니다. 작가가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한 DMZ는 날씨의 영향으로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안개로 인해 흐렸던 그날의 풍경은 작가가 DMZ에 오기 전 그 장소와 그 나라의 정세에 대해서 고찰하며 느꼈던 것과 닮아 있었습니다. 낯선 그곳에서 야생 산딸기와 오디를 먹어보고 처음 보는 새가 철조망 위에 앉아 쉬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릴 적 친구들과 같이 놀았던 기억을 회상하였습니다. 그 어느 날 한국과 북한의 아이들도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직접 눈에 담은 DMZ의 풍경과 작가의 기억을 겹쳐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하였습니다.
문경원 & 전준호Moon Kyungwon & Jeon Joonho
[파주] 캠프그리브스 보존막사

문경원 & 전준호, 〈자유의 마을〉(스틸 이미지), 2017-2023, 싱글 채널 HD 비디오, 사운드, 12분 15초, 작가 제공
문경원과 전준호의 최근 작업은 다학제적(학문과 학문 사이를 넘나들며 각 분야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연구 경향)인 플랫폼을 창조하는 협업 프로젝트 〈미지에서 온 소식, NEWS FROM NOWHERE〉를 중심으로 합니다. 그들의 장소 특정적 협업 플랫폼은 카셀 도쿠멘타 13(2012)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2012), 시카고예술대학 설리번갤러리(2013), 취리히 미그로스 현대미술관(2015), 테이트 리버풀(2018-2019),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2021-2022), 아트선재센터 (2022), 그리고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2022)에서 전시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문경원과 전준호는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축지법과 비행술〉을 2017년 런던 프리즈 프로젝트와 도쿄의 스카이 더 바스 하우스에서 〈자유의 마을〉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이 작업은 한국의 DMZ 내에 있는 ‘자유의 마을(Freedom Village)’에 관한 영상작업입니다. 70여 년 동안 시간이 멈춘 채 현실에서 소외된 이곳을 과거로부터 불러내어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모순과 한계를 직시하려 합니다. 한국의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조명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을 통속화시키는 제도와 권력으로부터 비판적 인식을 끌어내고, 고정적이고 타성에 젖은 것들을 환기시키며 새로운 시각과 사고의 개입을 유도합니다. 예술의 영역을 넘어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되짚게 하며, 인식의 지평을 넓혀 존재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미카엘 레빈Mikael Levin
[파주] 캠프그리브스 체육관

미카엘 레빈, 〈지뢰 숭고〉, 2015, 젤라틴 실버 프린트, 각 46 × 61 cm, Gilles Peyroulet & Cie 제공
미카엘 레빈(b.1954)은 장소와 정체성 그리고 일시적인 우리의 개념을 탐구합니다. 그의 사진 속 장소는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역사적인 사건과 동시대의 개연성을 탐구합니다. 그리고 그 장소들을 촬영하며 그의 사진에 장소가 가진 사회구조와 영향력 그리고 기억의 지형을 형성합니다. 마이클 레빈은 미국과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며 2010년 파리 유대인 박물관, 2009년 리스본 베라르도 미술관, 2003년 파리 국립도서관, 1997년 뉴욕 국제사진센터, 1980년 카라카스 멘도사 재단에서의 개인전을 비롯해 유럽과 미국에서 폭넓게 전시에 참여해 왔습니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했으며 뉴욕 휘트니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파리 국립현대미술기금 등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철원 근처, 비무장지대의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는 지역은 널찍이 정돈되어 경작된 논 사이에 설치된 촘촘한 군 요새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곳은 지뢰밭이 곳곳에 산재해 있기도 합니다. 철조망으로 구획이 이루어진 이 땅들은 60여 년 전 이 시골을 파괴한 전쟁 이후 훼손되지 않은 채 빽빽한 초목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습니다. 낭만적인 풍경은 공포스럽기도 한 아름다움을 유발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밀접하게 있어 숭고함을 느껴집니다. 현대적이며 길들여지고 조각된 풍경은 지뢰밭으로 대표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공포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전쟁의 흔적은 방해받지 않고 순수한, 새로운 형식으로 복원이 가능한 그대로의 자연으로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노완Noh-wan Park
[연천] 연강갤러리 2층[파주] 캠프그리브스 체육관

박노완, 〈동상들〉, 2023, 캔버스에 수채, 200 × 200 cm, 작가 제공
박노완(b.1987)은 회화를 주로 제작하며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를 수료하였습니다. 박노완은 주변에서 마주친 풍경이나 사물의 모습을 사진으로 수집하고 이를 소재로 삼아 회화를 제작합니다. 세상과 불화한 듯 보이는 사물들의 모습을 회화의 조형 조건 안에서 다시 한번 가공하여 표현합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싱거운 제스처들》(공간 가변크기, 서울, 2018), 《사람 얼룩》(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1), 《텅 빈 주머니를 헤집기》(갤러리 기체, 서울, 2022)이 있으며, 《가볍고 투명한: Light and crystalline》(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2020), 《박노완-전현선》(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0), 《You never saw it》(갤러리 기체, 서울, 2021), 《SOLO SHOW : 신∙세계 백∙화점(新∙世界 百∙畵店)》(부산 신세계 백화점,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부산, 2021), 《프레카리오 시티》(공간 카다로그, 서울, 2023) 등의 단체전에 참여하였습니다.
무언가가 오랜 기간 기억하길 바라며 제작되곤 하는 석상은 시간이 지나 환경과 상황이 변화하면서 본래의 의미와는 동떨어져 다르게 보이고는 합니다. 박노완은 DMZ 근방에 존재하는 다양한 돌조각상들을 통해 시간이 흘러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보이고 읽히는 풍경을 마주하였습니다. 작가는 시간과 흐름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본질이 왜곡되는 대상의 형상을 수채물감으로 그리고 다시 닦아내는 기법을 통해 지저분해 보이는 얼룩들로 치환하고 이 표현을 낯설지 않은, 익숙한 풍경으로 연출하였습니다.
박보마Boma Pak
[파주] 도라전망대 2층

박보마, 〈초록의 실제〉 , 2023, 생화에 페인트, 향, 스펀지, 비즈, 은방울, 실, 스틸, 교체 메뉴얼, 가변크기, 작가 제공
박보마(b.1988)는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감각을 빛과 물질에 비추어 보는 일을 합니다. 이를 위해 분위기(인상, 기분, 순간, 느낌 등)의 물질성, 힘 그리고 그의 반복(복제)을 탐구하며 다양한 매체와 증식적인 아이덴티티를 경유하여 외부적 사건으로 재현, 발화하기를 모색합니다. 그리고 박보마는 현재 Matter에서 조향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 가상의 회사 《Sophie Etulips Xylang Co.,»(2021)의 웹사이트(s-e-x-co.com)와 《물질의 의식 : 소피 에툴립스 실랑 컴퍼니의 임원진들>(리움미술관, 2023)을 개인전시로 선보였습니다. 《즐겁게! 기쁘게!>(아트선재센터, 2023), 《마이셀리아 코어, 레버카 손, 폴 앤 스티브》(수치, 2022), 《Girls in Quarantine》(2020), 《장식전》(오래된 집, 2020), 《Defense: …》(d/p, 2020), 《Shame on You》(두산갤러리 뉴욕, 2017), 《실키 네이비 스킨》(인사미술공간, 2016)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습니다.
이 작업은 38선을 두고 4km씩 유격을 둔 DMZ를 전망대에서 보면서, ‘천국’ 같다고 느낀 일에서 출발합니다. 국가라는 개념, 인공적인 무엇으로부터 벗어나 있는(벗어나 보이는) 자연의 이미지를 보며 낯선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 자연이 그저 이미지-스펙터클로만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감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곳을 경험할 수 있을까?’ 그 천국에 들어가 가까이 경험하는 비밀스러운 상황을 상상합니다. 실제는 범적이고 인공적인 경험입니다. 전망대의 관측경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다른 향이 묻어 있어 시각적인 정보가 주를 이루는 이상화되는 관측 경험을 다르게 만드는 작업이 떠올랐습니다. 그 다른 향은 어디서부터 왔고 어디까지 이어지며 또 어디서 나는 향일까요? (작가 노트에서 발췌)
박형진Hyungjin Park
[파주] 캠프그리브스 체육관

박형진, 〈나무 한그루를 심고 기다리는 이〉, 2023, 캔버스에 아크릴, 162 × 130 cm, 작가 제공
박형진(b.1986)은 서울과 경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입니다. 성신여자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매일 마주하는 풍경을 그리고 기록하는 형식으로 대상의 둘레를 사유합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지금 이따가 다음에》 (경기도 미술관, 안산, 2022), 《까마귀와 까치》 (상업화랑, 을지로, 2022) 등이 있으며, 《Contourless》 (Westbund art and design, 상하이, 2022), 《물과 바람의 시간》(대청호미술관, 청주, 2021), 전남 국제 수묵 비엔날레(비엔날레 3관, 목포, 2021), 《Selfish Art-Viewer: 오늘의 감상》 (금천예술공장, 서울, 2021), 《인블룸》 (하이트컬렉션, 서울, 2021), 《CRE8TIVE REPORT》(OCI미술관, 서울, 2018)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습니다.
박형진은 초록이 우거진 DMZ의 푸른 땅을 보며, 수많은 감정이 녹아 시간이 멈춰버린 땅, 미움을 꾹꾹 눌러 담고 있는 땅,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자라나는 어떠한 마음들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담아 DMZ에서 언제 찍었는지 알 수 없는 인터넷을 검색해 수집한 사진들, 2017년 안보 관광버스를 타고 방문하여 관광객의 시선으로 바라본 땅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 그리고 2023년에 촬영한 선명한 피사체를 가지고 있는, 세 시점의 푸른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출력해 같은 크기로 잘라 종이 위에 쌓았으며 그 모습을 작가의 붓질로 다시, 반복해서 그려냈습니다.
서용선Suh Yongsun
[연천] 연강갤러리 1층

서용선, 〈전쟁과 여인〉, 2010, 캔버스에 아크릴, 130 × 162 cm, 서용선 아카이브 제공
서용선(b.1951)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을 하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및 명예교수를 역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 개인전으로 《서용선의 마고이야기, 우리 안의 여신을 찾아서》(서울여성역사문화공간 여담재, 서울, 2021), 《만첩산중(萬疊山中) 서용선회화》(여주미술관, 여주, 2021), 《통증·징후·증세: 서용선의 역사 그리기》(아트센터화이트블럭, 파주, 2019), 《확장하는 선, 서용선 드로잉》(아르코미술관, 서울, 2016), 《서용선의 도시그리기: 유토피즘과 그 현실사이》(금호미술관 / 학고재갤러리, 서울, 2015), 《기억·재현, 서용선과 6.25》(고려대학교 박물관, 서울, 2013) 등이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죽어간 일반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입니다. 많은 부녀자는 남편과 자식을 잃고 평생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은 무기에 의한 살상과 함께 인간성의 실험장이기도 합니다. 적군에 대한 맹목적인 적개심이 동물적 본능과 결합하여 필요 이상의 살상이 이루어집니다. 이 그림들은 전후 미아리 공동묘지 주변에 뒹굴던 해골들에 대한 체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수년간 지속된 일상의 체험과 오늘날 인간의 죽은 모습조차 보기 힘든 도시적 삶과의 대비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 그림에서 전쟁에서의 죽음이 어떻게 산 자들에게 고통으로 다가오는가 하는 점과, 죽음과 폐허로 변해버린 산하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녹색조의 색채는 그 황폐함을 넘어서, 자연의 생명력을 암시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는 내 안에서 느끼는 죽음 너머의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이중의 갈등이 아닌가 생각하게 합니다. 50년대 말과 60년대 초의 미아리 공동묘지 주변의 체험이 스며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아국민학교 개교하기 전 운동장에 정리 안된 해골들의 모습의 기억이 6.25전쟁의 내용으로 변환된 것입니다. (2013년 2월 7일 작가 노트)
[파주] 캠프그리브스 체육관

서용선, 〈시선〉, 2005, 린넨에 아크릴, 500 × 480 cm (2p), 서용선 아카이브 제공
꾸준히 사회와 정치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동시대의 사건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서용선은 이번 전시에 남과 북 사이의 갈등을 소재로 하는 두 점을 선보입니다. 〈시선〉은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휴전선을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작가는 그 현장을 방문하여 남과 북이 서로 마주하는 장면을 보면서 분단된 국토에 대한 다층적인 기억을 교차하였습니다. 작가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상황 앞에서 느낀 공포와 긴장 그리고 증오와 열망 같은 감각적인 자극을 경험하였고 그 감정들을 화폭에 표현하였습니다. 〈뉴스와 사건〉은 1990년대 후반, 당시 북한에서 벌어진 식량 파동과 미사일 발사 및 핵 개발로 남북한의 긴장 관계가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그린 작품입니다. 남북의 관계는 악화하여 연일 위협적인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며 작가는 긴장감을 유발하던 당시 사건들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풀어내며 그렸습니다. 그러나 이후 2000년대에 남북한 교류가 시작되며 평화의 분위기로 전환이 되었습니다. 서용선은 역사가 되는 현장들을 경험하며 그 일련의 사건들이 맥락 속에서 이해되고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묵묵히 작품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성립Seonglib
[연천] 연강갤러리 1층[파주] 도라전망대 2층

성립, 〈아래에는〉, 2023, 디지털 드로잉, 15초, 사진: 아인아
성립(b.1991)은 반복된 선으로 완성되는 드로잉 작업을 토대로 종이 위 드로잉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늘 새로운 매체의 사용을 지향합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신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혼』 등의 종이책 일러스트 작업 뿐 아니라 프라다, 골든구스, BMW 등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스틸, 패브릭, 도자 등의 색다른 재료에 입혀지며 매체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2023 파도의 조각들》, 《2020 흩어진 파편들》, 《2019 작-업으로서의 드로잉》 등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흥미가 있다고 말하는 그의 드로잉은 아무도 재현하지 않는 동시에 누구든지 가리킬 수 있습니다.
DMZ 안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영원하진 않으나 끊임없이 순환합니다. 때때로 자연은 화재 등으로 모두 소실되듯 보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화마의 흔적이 사라지면 다시 새로운 싹을 틔웁니다. DMZ의 자연은 밤과 낮, 그리고 여러 계절을 거치며 자연의 법칙에 따라 무한 재생되고 있습니다. 〈아래에는〉은 이처럼 반복과 변화를 거듭하는 DMZ 자연의 경이로움을 드로잉 영상으로 선보입니다. 흙 아래에서 식물들은 뿌리가 뒤엉켜 군집을 이루며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고, 또 새로운 종자를 만들기도 하고, 생태계를 유지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성시경Sikyung Sung
[연천] 연강갤러리 2층, 경원선 미술관(신망리역)[파주] 캠프그리브스 체육관

성시경, 〈오델로〉, 2022-2023, 캔버스에 유채, 116.1 × 91.9 cm, 작가 제공
성시경(b.1991)은 서울을 기반으로 회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 예술과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순간적인 즉흥성과 내재된 계획성 사이에서 회화표면에 드러나는 움직임을 탐구합니다. 개인전 《엑시트 엑시트 Exit Exit》 (공간 형/쉬프트, 서울, 2019)를 열었으며, 그룹전 《흰 그림》 (갤러리 팩토리, 서울, 2023) 《썬룸 SUNROOM》 (갤러리 BB&M, 서울, 2023), 《투투 Two 透》 (P21, 휘슬 Whitsle, 서울, 2022), 《물질, 구름》 (아트스페이스3, 서울, 2022), 《룰즈》 (원앤제이 갤러리 ONE AND J. GALLERY, 서울, 2016) 등에 참여했습니다.
성시경의 작품은 오래전 중단한 그림을 바탕으로 합니다. 언제 그렸는지, 어떤 생각과 감정에서 멈췄는지 기억이 잊힐 정도로 시간이 지난 캔버스를 다시 마주했을 때 떠오르는 상상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성시경은 그림이 중단되었던 시간을 단절된 시간이 아닌 연속적인, 숙성의 시간으로 받아들입니다. 작가는 캔버스에 구체적으로 물감이 올라가는 방식, 순서에 따라 선과 면의 경계가 계속해서 뒤바뀌는 화법을 구성합니다. ‘오델로’라는 보드게임은 그의 기법과 유사합니다. 녹색의 격자무늬 판 위에 흑색 돌이 앞과 뒤로 놓이면 가운데 백색 돌이 전부 흑색 돌로 변화하는 법칙에 비유한 그의 화법은 점, 선과 면이 상대적으로 구성되고 변화하며 채워집니다. 성시경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유동성은, 오늘날 DMZ의 정지된 듯한 풍경 이면에 다양한 사건과 세계정세에 맞추어 시시각각 변화하는 분위기, 모습과 비견됩니다.
써니킴Sunny Kim
[연천] 연강갤러리 2층[파주] 캠프그리브스 체육관

써니킴, 〈벼랑〉, 2021, 캔버스에 아크릴, 51 × 64 cm, 작가 제공
써니킴(b. 1969)은 뉴욕 쿠퍼유니온 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뉴욕 헌터 대학원에서 종합매체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이중의 정체성을 통해 현실화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 파편화된 기억의 이미지들을 회화의 형식으로 재현합니다. 나탈리 카그 갤러리, 뷰잉룸(뉴욕, 2021), 에이라운지(서울, 2020), 인천아트플랫폼 극장(인천, 2014), 스페이스 비엠(서울, 2013), 갤러리현대 16번지(서울, 2010), 일민미술관(서울, 2006) 등의 개인전을 가졌고 국립현대미술관(서울, 2021), 아트센터 화이트블럭(파주, 2019), 런던 A.P.T(런던, 2018),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서울, 2017), 문화역서울 284(서울, 2012), 비엔나 쿤스트할레(비엔나, 2007), 서울시립미술관(서울, 2007)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였습니다. 현재 서울과 뉴욕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써니킴의 회화는 기억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을 한 화면에 구성하여 그림 너머 상상의 세계를 구현합니다. 그의 회화가 지닌 불분명한 경계와 익숙하지만 낯선 이미지들은 작가가 만들어 내는 완벽한 이미지임과 동시에 다양한 내러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에 등장하는 풍경은 어딘가 본 듯한 익숙하지만 정확하게 어디라고 부를 수 없는 곳입니다. 어디부터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없는 강물과 어디에서 보았을 법한 산은 사실 명확하게 실재하지 않는 구역인 DMZ의 어느 지점과 같습니다. 〈벼랑〉에서는 옛날 교복을 입은 소녀는 아무도 없는 생경한 풍경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소녀를 통하여 우리는 DMZ의 흘러가 버린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또 불확실한 미래 시간들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에서는 보다 불분명한 경계로 속도감이 느껴지는 불안한 풍경을 표현하였습니다. 이곳은 작가가 중국도, 북한도 아닌 두만강의 어느 지점을 바라보고 그렸습니다. 작가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에서 느낀 수많은 감정을 표현한 이 그림은 실재하는 풍경이자 작가가 느낀 감각의 풍경입니다.
옥승철Ok Seungcheol
[연천] 연강갤러리 2층[파주] 도라전망대 1층

옥승철, 〈녹색 광선〉, 2023, 캔버스에 아크릴, 150 × 120 cm, 작가 제공
옥승철(b.1988)의 회화는 개념화된 이미지의 최초 출력물입니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 내부의 벡터 좌표에서 작업을 시작하며 흥미롭게 지켜보는 이미지는 만화, 영화, 게임 등 화면의 내부에서 변주되고 복제된 디지털 이미지입니다. 원본의 존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복제되고 열화된 디지털 이미지는 캐릭터의 얼굴이라는 구상화의 틀 안에서 합성되고 재해석됩니다. 그에게 회화란 전시 기획과 공간에 맞추어 크기와 목적을 달리한 3차원 오브젝트로 전환 가능한 시작점으로서의 원화입니다. 옥승철은 캔버스와 물감이라는 기성 양식으로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절대적 좌표를 출력하고 있습니다. 옥승철은 중앙대학교 서양화과 학부를 졸업했습니다. 개인전은 아트선재센터(2022, 서울), 및 기체(2020, 2018, 서울)가 있습니다. 주요 그룹전으로는 펑크갤러리(2022, 상해), 누크 갤러리(2022, 서울), 대전시립미술관(2021, 대전), 더그레잇컬렉션(2021, 서울), 대구미술관(2019, 대구) 그리고 플랫폼 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2019, 서울) 등이 있습니다.
〈녹색 광선〉과 〈구름〉은 만화에서 보이는 상징을 선택/편집하는 시리즈입니다. 레이저의 사격, 폭발의 한 장면을 멈춰 놓은 듯한 이미지는 이념, 인종, 폭력, 전쟁 사이의 첨예한 갈등을 표현합니다. 두 회화는 모두 적과 아군,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전혀 드러내지 않도록 편집되었습니다. 다만 DMZ의 맥락에서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과 일시 정지된 우리의 역사가 겹쳐 보이기를 의도했습니다.
이끼바위쿠르르ikkibawiKrrr
[연천] 연강갤러리 1층[파주] 도라전망대 1층

이끼바위쿠르르, 〈덩굴: 경계와 흔적〉, 2023, 식물, 캔버스 위에 아크릴, 160 × 1800 cm, 〈덩굴: 경계와 흔적〉을 위한 이미지, 작가 제공
이끼바위쿠르르(2021년 결성)는 시각 연구 밴드이며, 현재 구성원은 고결, 김중원, 조지은입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식물, 자연현상, 인류, 생태학과의 연계를 탐구합니다. ‘이끼바위’는 이끼가 덮인 바위, moss rock을 의미하며, ‘쿠르르’는 일종의 의성어입니다. 이끼는 대기와 흙의 경계층에서 작은 몸으로 적응하며, 주변 환경에 따라 그 세계를 확장 시킵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이끼가 살아가는 방식을 프로젝트와 태도에 적용하고자 하며, 열대와 해초를 연구하며, 또한 농부들과 같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방식이 움직임의 일부가 되어 그 경계층을 넓힌다는 의미는 이끼바위쿠르르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이주’라는 큰 개념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정치 사회적 맥락을 넘어, 식물과 공동체, 그리고 지구 구성원 모두의 시간성에 대해서 탐구합니다. 주요 참여 전시로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광주, 한국, 2023), 도큐멘타 15(카셀, 독일, 2022), 《땅 밑 달리기》 (엘리펀트스페이스, 서울, 2022), 《Resbakan: Solidarity Event Lumbung FILM》 (UP Film Institute,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Diliman, Quezon City, 2022), 《수원공공예술 도시충;동 예술충;동》 (문화도시 수원, 수원문화재단, 2021) 등이 있습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DMZ 일대 식물을 채집하여 그것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구성을 한 그래피티 작품을 벽면에 선보입니다. DMZ는 사람이 일상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곳인 동시에 식물들의 자생이 가능한 역설로 잠식된 공간입니다. 이곳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기에 인식하지 못하는, 숨겨진 공간, 일종의 어떤 '틈'과 같습니다. 긴장의 공간임과 동시에 완충지대인 역할을 하는 이곳에서 식물은 허용된 침입자입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파고드는 덩굴들의 흔적을 기록하는 동시에 이 공간에 대한 애도의 의미를 담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우성Woosung Lee
[연천] 연강갤러리 2층[파주] 도라전망대 2층

이우성,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21, 천에 아크릴릭 과슈, 아크릴, 수채, 200 × 410 cm, 리얼디엠지프로젝트 제공
이우성(b.1983)은 일상적인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어 오늘날 사회 속 사람들의 초상을 그립니다. 그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2008년 첫 그룹전 참여를 시작으로 아르코미술관(서울, 2020), 서울시립미술관(서울, 2019) 등 한국 주요 국공립 미술관에서 전시를 해왔습니다. 동시에 커먼센터(서울, 2014), 아트 스페이스 풀(서울, 2015), 아마도예술공간(서울, 2017) 등 한국 주요 대안공간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해외에서는 두산갤러리(뉴욕, 미국, 2016) 웩스포드 아트센터(웩스포드, 아일랜드, 2015)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서울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이우성은 2021년 여름 경기도 김포에 자리한 야산인 애기봉에 방문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154고지라고 불리며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던 애기봉은 북한의 해물선전마을과 불과 1.5km의 거리에 자리합니다. 애기봉 앞으로는 한강,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이 모여 서해로 흐르는 마지막 구간인 조강이 자리합니다. 작가는 조강 너머 흐릿하게 보이는 북녘땅을 바라보며 개인으로서 흡수했던 북한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북한 땅 어딘가에 있을 이름 모를 한 사람의 이야기, 특히 정치와 이념의 싸움 속에서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을 겪어야 했을 누군가를 상상했습니다. 작품 제목인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는 작가가 북한에 있을 “그”에게 건네는 인사말입니다. 답사 당시 흐린 날씨 때문에 망원경 렌즈를 통해 겨우 바라보아야 했던 저 너머의 풍경은 밝은 분홍빛 천 위에 더욱 선명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작가는 4미터 너비의 천 위에 그가 보고 상상한 것을 충실히 담아내었습니다.
이재석Jaeseok Lee
[연천] 연강갤러리 1층 [파주] 도라전망대 1층, 캠프그리브스 체육관

이재석, 〈오성 텐트〉, 2020, 캔버스에 아크릴, 겔 미디엄, 161.7 × 240.9 cm, 작가 및 갤러리바톤 제공
이재석(b.1989)은 목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미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챕터투(2022), 서울시립미술관 SeMA 창고(2021)에서의 주요 개인전을 포함하여, 갤러리바톤(2023),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2022), 서울대학교 미술관(2022), 스페이스 K(2020), 대전시립미술관(2019) 등 유수 기관의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대전시립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이재석은 군대에서의 자전적 경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수년간 신체와 물체의 구성 요소가 지닌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실내외의 경계가 명확해진 시대적 변화와 군중을 피해 자연으로 떠나기 시작한 사람들의 모습을 ‘안’과 ‘밖’이라는 양가적 속성을 지닌 ‘텐트’라는 소재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구조와 설치 방법을 체득한 군용 텐트로 연계되었으며, 텐트라는 구조물의 구성 요소인 폴대와 로프 그리고 천의 상호작용에 집중하여 〈텐트를 설치하는 방법〉 연작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D형 군용 텐트에 권력과 허상을 상징하는 별이 표현된 〈오성 텐트〉 그리고 폐쇄된 벙커처럼 보이는 〈쉘터_2〉를 통해 작가는 안과 밖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인지 분단된 국토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이정훈Jung-hoon Lee
[연천] 연강갤러리 야외[파주] 캠프그리브스 도큐멘타 야외

이정훈, 〈금지된 걸음〉, 2023, 철, 철조망, 170 × 80 × 80 cm, 작가 제공
이정훈(b.1969)은 경기도 연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입니다.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뉴욕 브룩크린 칼리지(Brooklyn College)에서 M.F.A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자연에서 얻은 이미지들의 드로잉을 통해 유기적으로 확장되거나 해체하며 시작합니다. 얻어진 이미지는 재료를 꼬거나 말거나 겹치게 하여 시간의 형태가 만들어지며 그 과정 중 선택된 우연의 결과물로 작품의 형태를 결정합니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반복된 행위 통하여 무한한 시간의 영속성과 모호한 형태와 공간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mirror》(Gallery 통, 서울, 2012), 《Day by Day & Eternity》(Gallery 허브빌리지, 연천, 2008), 《Time And Repetition》(금산갤러리, 서울, 2002), 《Question of Spot》(Pleiades Gallery, 뉴욕, 1998) 등이 있으며, 《지혜의 씨앗 연천, 사람들》(peacebricks, 연천, 2020), 《ECO-ART 연천 국제조각 심포지엄》(구석기박물관, 연천, 2009)등 다수의 그룹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전쟁이 멈춘 70년, 걸음도 묶여버린 시간을 철로 만든 다리와 이를 아프게 옥죄는 얽힌 철조망으로 형상화한 〈금지된 걸음〉은 현재 남북의 경계 상황과 이동이 불가능한 우리의 영토를 직설적으로 드러냅니다. 이정훈은 언젠가는 철조망으로 덮인 족쇄와도 같은 굴레를 벗어나고, 나아가 하나 되는, 통일 대한민국을 바라며 작품을 구성하였습니다.
임민욱Minouk Lim
[연천] 연강갤러리 1층[파주] 캠프그리브스 체육관

임민욱, 〈커레히 - 홀로 서서〉, 2023, 36장 군용모포, 아크릴 물감,스프레이 페인트, 가변설치, 사진: 아인아
임민욱(b.1968)은 1995년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2008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첫 개인전 《임민욱: 점프 컷》을 가진 후, 워커아트센터의 《그림자 열기》(2012), 플라토 삼성미술관의 《만일의 약속》(2015), DAAD갤러리의 《뉴타운 고스트 家家戶戶》(2017) 등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현실과 중층적 관계를 맺는 혼종적 장르 형식을 주로 선보여 왔으며 첨예한 정치적 맥락을 도전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시적 내러티브와 결합한 고유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리버풀,
이스탄불,
시드니, 타이페이, 광주, 부산비엔날레 등에 참여하였고 에르메스 미술상, 올해의 작가상, 로버트 라우센버그 레지던시, DAAD레지던시 기금 등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커레히’는 체로키어로 ‘홀로 서다’ ‘홀로 버틴다’라는 뜻이자 캠프그리브스에 주둔했던 미2사단 506연대의 모토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의 낙하산 보병을 훈련하던 506연대는 조지아주
커레히
산 근방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국내 주둔한 가장 오래된 미군기지 가운데 하나였던 캠프그리브스의 체육관 시설에는 총 36장의 군용 모포가 높은 천장으로부터 낙하산처럼 걸려 있습니다. 군용 모포는 혹독한
훈련과 참혹한 전장 속에서도 잠시나마 의지할 수 있는 안전과 평화의 영역이어야 합니다. 작품에 사용된 군용 모포의 앞면에는 간혹 국군 이름과 물감이 배어 나온 흔적들이 있고, 이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형상들이 떠 있습니다. 허공에 떠 있는 모포들은 꿈처럼 해석이 불가능하고 피아 구분이 불가능한 경계를 보입니다. 군대는 몸과 생각 등이 훈육되는 장소이지만, 잠은 연대 없이, 이념 없이, 목적 없이
다가옵니다. 〈커레히-홀로 서서〉는 통제된 DMZ를, 통제를 벗어난 영토로 그리고 있습니다. 잠은 정복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장수미Su-Mi Jang
[파주] 캠프그리브스 체육관

장수미, 〈꿀렁꿀렁 감각 에이징〉, 2022, 퍼포먼스, 사진: 박수환,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장수미(b.1973)는 안무가이자 퍼포머로 서울과 베를린에 오가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중앙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예술대학에서 안무로 예술학 석사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녀는 정동, 체화, 신체성의 관계를 감지되지 않는 힘의 움직임으로 탐구합니다. 엘아이지 문화재단, 독일 프라이부르크 극장의 협력 예술가였으며, 스위스 테아터스펙타클 쮜리히,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등에 초청되었습니다. 대표 작업으로 젠더와 신체성을 연구한 〈필리아〉 (2012), 〈튜닝〉 (2014), 스크림을 매개로 한 〈scream es-say〉 (2017), 〈Dead-body Being〉 (2018), 〈퀴어링 보이스〉 (2021) 등이 있습니다.
〈오블리끄 센세이션(Oblique Sensation)〉은 이질적 공간이 갖고 있는 표면의 기억과, 신체의 무-의식적 영역에 존재하는 움직임들이 교차하는 현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두 신체는 서로를 탐색하며 횡단하는데 손가락 끝의 떨림은 타자의 살갗에 잠시 머물렀다가 미끄러지면서 내부로 파고들어 가 극도의 포화 상태가 됩니다. 그 신체는 포자가 되어 캠프그리브스의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주합니다.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시공간에 있는 우리는 돌봄, 폭력성, 경계 없음, 무관심, 욕망과 함께 고르지 않은 길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전쟁이 기록하는 공식적인 사건과는 달리 신체의 미시적인 감수성에 기생하는 움직임들은 서로를 수용하며 동시에 변환하게 하는 정동의 지점을 모색합니다.
정소영Soyoung Chung
[연천] 연강갤러리 야외 [파주] 도라전망대 야외

정소영,〈환상통〉, 2023, 자연석, 스테인레스판, 베어링, 약 140 × 90 × 60 cm, 40 × 60 × 70 cm, 작가 제공
정소영(b.1979)은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낸 후 파리의 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장소 특정적 설치, 조각, 비디오, 공공적 개입 등의 활동을 통해서 공간의 정치학에 대하여 질문해 왔습니다. 지질학을 통해 역사의 면면을 시각화시켜 온 작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에서 형성되는 시간의 근원적 층위를 심도 있게 연구하며, 역사와 시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다층적 관계를 사회의 불확정성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합니다. 정소영은 2011년 OCI 영 크리에티브, 2016년 송은미술대상 우수상 등을 수상했으며, 금호미술관(2007), PS 사루비아(2008), 대림미술관구슬모아 당구장(2013), 아트선재 오프사이트(2016), 원앤제이갤러리(2021), CR Collective(2022) 개인전과 Real DMZ project(2018, New Art Exchange, Nottingham, U.K), Borderless-Curitiba International Biennale(2019, Oscar Niemeyer Museu, Brazil), Power Play(2019, Delfina Foundation, London, U.K) 그룹전을 가졌습니다.
환상통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신체의 부위에서 고통을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각각 한 면이 절단된 두 개의 돌은 본래 서로 하나였는지 혹은 다른 두 개의 돌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지속적으로 빛과 위치에 따라 변화하며 보이는 절단된 돌의 형상은 과거 돌의 형상과는 무관하게 새로운 모습을 보입니다. 잘려 나간 돌 위에 계속해서 변하는 금속에 몸을 붙여 존재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불확정적 상태는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지각하고 기억하는 존재-부재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전망대에 올라서서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인식 속에서 사라지고 없는 부분을 감각하는 모순된 상황에 놓이고, 물리적 존재의 유무보다 기억의 작동에 더 강한 영향을 받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경진 / 조혜령Kyung Jin Zoh/Hye Ryeong Cho
[연천] 연강갤러리 1층[파주] 캠프그리브스 도큐멘타 야외

조경진/조혜령,〈식물 평행세계〉, 2023, 싱글채널 비디오, 사운드, 4분 13초, 작가 제공
조경진(b.1961)은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설계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0년부터 철원의 공간기획, 경관 연구 및 DMZ 전망대 답사를 바탕으로 전시기획 및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The observatory project〉으로 《Facing North Korea》(마인 블라우, 베를린, 2018), 〈DMZ botanic garden〉으로 《경계협상》(런던, 2019 / 파리, 2020), 〈Mine Flower〉로 《오차범위》(요하네스버그, 남아프리카공화국, 2021), 광주디자인비엔날레(광주, 2021) 등 전시에 참여하였습니다. 조혜령(b.1981)은 정원이 갖는 문화적·사회적 가치를 믿으며 이론과 실무의 경계를 탐색하는 조경가입니다. 순천국제정원박람회에 〈물을 담는 큰그릇〉(2013), 〈어느선비의 느린정원〉(2013), 북미지역 가든쇼인 Reford Garden Festival에 〈콘가든복실〉(2014) 등 정원작품을 출품하였으며, 서울식물원 개원기념 전시 《식물탐험대》(2019), 《식물극장》(2020)을 기획하고 실행했습니다. 현재, 조경설계사무실 '조경하다열음'에서 소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식물은 비정치적 존재입니다. 현재 남한과 북한은 절반 이상의 식물을 다르게 부르고 있습니다. 같은 종이지만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식물들로 하나의 정원을 만듭니다. 22종의 식물로 만들어 내는 집합적 풍경은 평행세계를 이룹니다.
식물리스트 (남한명-북한명. 학명)
산사나무-찔광나무. Crataegus pinnatifida
수수꽃다리-넓은잎정향나무. Syringa oblata Lindl. var. dilatata
고광나무-조선산매화. Philadelphus schrenkii
귀룽나무-구름나무. Prunus padus L.
함박꽃나무-목란 Magnolia sieboldii
백당나무-접시꽃나무. Viburnum opulus L.
회양목-고양나무. Buxus microphylla var. koreana
쥐똥나무-검정알나무. Ligustrum obtusifolium
쑥부쟁이-푸른산국. Aster yomena
냉초-숨위나물. Veronicastrum sibiricum
부처꽃-두렁꽃. Lythrum anceps
산박하-깨잎오리방풀. Isodon inflexus
벼룩이울타리-긴잎모래별꽃. Eremogone juncea
산국-기린국화. Chrysanthemum lavanduliofolium
큰꿩의다리-잔가락풀. Thalictrum kemense
노루오줌-노루풀. Astilbe chinensis
배초향-방아풀. Agastache rugosa
용담-초룡담. Gentiana scabra
까치수염-꽃고리풀. Lysimachia barystachys
도깨비부채-수레부채. Rodgersia podophylla
마타리-맛타리. Patrinia scabiosifolia
실새풀-새풀. Calamagrostis arundinacea
도움을 주신분들: 손정희 Son Jung Hee, 이애경 Lee Ae Kyung, 김이경 Kim Lee Kyung, 정은하 Jung Eun Ha, 김명윤 Kim Myuoung Yoon
*〈식물 평행세계〉는 파주 캠프그리브스에 전시를 위해 설치된 정원이다.
최원준Che Onejoon
[연천] 임진강 평화습지원, 경원선 미술관(대광리역)

최원준, 〈전쟁부조, 한국전쟁, 이원등 상사, 김풍익 축석령, 1988 / 1966 / 1992〉, 2008, 잉크젯 프린트, 160×95cm, 작가 제공
최원준(b.1979)은 한국 분단 문제를 다룬 사진 작업을 시작으로 북한과 아프리카의 외교관계에서 나온 다양한 사례들을 연구하며 사진, 영화, 설치미술을 발표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관계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며 동두천에서 스페이스 아프로아시아를 운영 중입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캐피탈 블랙》(학고재 갤러리 2022), 《인포메이션》(신도문화공간 2015) 등이 있으며 자카르타 비엔날레 2021, 루붐바시 비엔날레 2019, 부산 비엔날레 2018, 뉴 뮤지엄 트리엔날레 2015,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 2014 등 다수의 국제전시에 참여해 왔습니다. 주요 수상으로는 신도미술상, 프랑스 국립 케 브랑리 미술관의 사진상, 일우사진상이다. 주요 펠로우 쉽은 팔레 드 도쿄 미술관 르 파비용 2011, 파울 클레 여름 아카데미 2013, 라익스 아카데미 프로그램 2017-2018 등이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 펴져 있는 전쟁 기념비의 대부분은 군사정권 시절 만들어졌습니다. 전쟁기념비는 부조와 함께 만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인데, 부조는 전쟁의 참상을 좀 더 쉽게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한국군이 북한군을 무찔렀다는 식의 서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조 작업은 국가가 전쟁을 설명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부조사진과 함께 전시장에 있는 군사시설들의 사진은 전쟁이 일어날 때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들로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다시피 한 방호벽 그리고 버려진 미군 부대의 내부, 사용되지 않는 예비군훈련장 등입니다. 이번 군사시설들은 우리 일상의 주변에서 오랜 시간 공존해 왔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것들로 현재도 진행중인 한국의 냉전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 노트에서 발췌)
[파주] 캠프그리브스 도큐멘타, 임진각 평화누리

최원준, 〈미군 기지촌 클럽에 대한 작은 역사〉, 2008-2021, 디지털 C-프린트, 영상, 책, 가변크기, 작가 제공
한국에서 미군 클럽의 역사는 미군 주둔의 역사와 함께 시작됩니다. 한국의 미군 클럽 문화는 많은 문학가에게 영감을 주어 기지촌 문학이라는 장르를 탄생시켰습니다. 〈미군 기지촌 클럽에 대한 작은 역사〉 연작은 역사적으로 정리된 적 없는 미군들의 클럽 문화를 사진과 소설, 그리고 영화 자료들을 통하여 보여줍니다. 미군 클럽이 성행했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안정효 소설 원작의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1991)와 미군을 최초로 묘사한 신상옥 감독의 영화 〈지옥화〉(1958)의 스틸 사진, 기지촌 문학작품들, 그리고 경기 북부 미군 철수 지역에 남아있는 미군 클럽 사진들이 함께 전시됩니다. 또한 1980년대 AFKN과 동두천 클럽 거리에 대한 영상작업을 함께 소개합니다. 이 연작에 등장하는 문화적 산물들을 통하여 우리는 미군이 한국 사회에 변화를 준 다양한 지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1968년 김신조 간첩 사건 이후 경기 북부에 건설된 군사시설들은 도시와 자연 속에서 자신을 위장하며 보는 이에게는 일종의 허구적 파사드를 드러냅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위장된 군사시설은 경제발전의 욕망 아래 조금씩 사라지는 중입니다. 서울 도시개발의 대표 격인 뉴타운 사업이 시행된 2008년의 은평 뉴타운 공사 현장에는 마치 유물 발굴 현장처럼 땅을 파고 산을 깎을수록 감춰져 있던 군사시설의 내부 구조가 드러났습니다. 뉴타운이라는 부동산에 대한 욕망과 맞물려 하나둘 사라져가는 군사 유물들은 대북 정책에 대한 정치, 사회적 변화를 나타내는 하나의 단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풍경은 국가 안보를 뛰어넘는 경제 논리의 증거이며,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 부에 대해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안보의 논리를 앞장서는 욕망 앞에 사라지는 군사시설들은 소명을 다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사라지며 냉전의 종식을 알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킴 웨스트팔Kim Westfall
[연천] 연강갤러리 1층[파주] 도라전망대 2층, 캠프그리브스 도큐멘타

킴 웨스트팔, 〈아이소트리아 메데올로지스, 다시 꿈꾸는 DMZ〉, 2022, 천에 터프팅 된 오간자 리본, 114.3 × 127 cm, 작가 제공
킴 웨스트팔(b.1986)은 서울에서 태어나 뉴욕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예술가입니다. 터프트건을 활용한 태피스트리 기법을 활용하여 그의 개인적인 역사와 미국의 중첩된 역사를 결합하고 있습니다. 뉴욕의 화이트 컬럼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Jerome Foundation Travel and Study에서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2021년 "As an Angel-American"이라는 배너를 제작하여 비행기에 설치한 공공예술작품을 2023년 11월 그리스의 알로슈 베니아스 갤러리에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다시 꿈꾸는 DMZ〉 연작은 비무장지대의 자연이 보존된 곳에서 자라는 난초를 우연히 발견하고 관찰한 작업입니다. 작가는 2022년 고성의 DMZ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서식하는 동식물을 보았습니다. 이 난초들은 비무장화된 지역에서 사람의 접근이 거의 허용되지 않는 곳에 번식하고 있기에 과거와 미래에도 계속해서 살아갈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이 한국에 개입하여 남긴 유산과 자연의 야생성과 아름다움 사이의 변증법들로 위기 속에서 묘한 기회를 만들어 낸 것과 같습니다.
한국의 카페에서 마주치는 제3의 장소라는 콘셉트에서 영감을 받은 〈스파이시 메모리〉는 가상의 상호작용을 하는 오늘날 한국 자연의 모습과 군사화되고 정적인 DMZ 체크포인트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작가가 텍스타일 작업을 위해 선택한 재료인 리본, 고춧가루, 찢어진 입양 서류는 턴테이블의 아크릴 레진 레코드판 위에서 회전합니다. 레코드판의 바늘은 레코드판과 닿지 않습니다. 대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감상적인 미국의 팝 음악이 흘러나오며 예상을 뒤엎습니다. 미군 장교의 숙소에 설치된 〈스파이시 메모리〉는 캠프그리브스의 역사와 미국 그리고 한국 간의 복잡한 상호 관계를 연결합니다. 소리 없이 회전하는 재생할 수 없는 곡이 담긴 레코드판은 이념적 공간이자 자연 보호구역 그리고 군사적 체크포인트로서의 비무장지대의 모순을 반영합니다.
토모코 요네다Tomoko Yoneda
[연천] 연강갤러리 1층, 연강갤러리 야외, 경원선 미술관(신탄리역)[파주] 도라전망대 야외, 도라전망대 1층, 임진각 평화누리

토모코 요네다,〈지뢰밭 - 대한민국 파주시 비무장지대 내 관광지 주변에 위치한 지뢰밭 전경〉, 2006/2023, 철구조물, 나무판넬, 천에 UV 프린트, 237.5 × 300 cm, 작가 및 Shugo Arts 제공
일본 효고현 출생인 토모코 요네다(b.1965)는 현재 런던에 거주하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작업은 사람들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 장소들에서 시작합니다. 그녀는 사진을 통해 역사적인 사실이 내재된 특정한 장소와 사물들을 탐구하고, 각 장면 이면의 기억을 상기시킵니다. 대표 전시로는 《세계 교실》(모리 미술관,도쿄, 2023), 《에코 - 부서지는 파도》(슈고아츠, 도쿄, 2022), 《토모코 요네다》(마프레 재단, 마드리드, 2021), 제21회 상하이 비엔날레(상하이, 중국, 2018-2019),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서울, 2014), 제10회 광주비엔날레(광주, 한국, 2014), 《우리는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날 것이오》(히메지 시립미술관, 효고, 일본, 2014 / 도쿄 사진 미술관, 도쿄, 2013), 제52회 베니스비엔날레(베니스, 이탈리아, 2007) 등이 있습니다.
한반도를 가르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약 4km에 걸친 DMZ에는 다수의 지뢰가 매장되어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됩니다. DMZ는 국경이 아닌 1953년 7월 27일 발효된 한국전쟁 휴전협정에 따라 생긴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기에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한반도가 전시 중임을 인지시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DMZ는 야생동식물의 독자적인 생태계가 형성된 평화로운 자연 낙원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일제로부터 해방 독립한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냉전 시대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초토화되었습니다. 하나로 이어진 땅과 사람을 둘로 나눈 이 비무장지대 주변에는 인간이 그은 경계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태양과 하늘 아래 온화한 꽃들이 피어납니다. 꽃, 풀, 그리고 나무들은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또 저항하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경계와 이데올로기적 개념이 없는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떠돌아다닙니다. 이는 동시에 개인이라는 작은 존재가 국가, 사회, 종교 등 큰 집단에 편입되어 운명에 휘둘리는 모습을 비추고 있습니다.
함경아Kyungah Ham
[파주] 캠프그리브스 체육관

함경아,〈재인쇄된 시차 17시와 17:30시 사이, 예시 1-1〉, 2023, 아키발 피그먼트 프린트, 리본 테이프, 천, 320 × 320 × 160 cm, 사진: 아인아, 작가 제공
함경아(b.1966)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동시대 예술가입니다. 평면,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의 작업을 통해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의 틈을 파고듭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함경아전》(Pace Gallery, 홍콩, 2018), 《유령의 발자국》(Carlier Gebauer, 마드리드, 2019 / 베를린, 2017), 《유령의 발자국》(국제갤러리, 서울, 2015), 《욕망과 마취》(아트선재센터, 서울, 2009) 등이 있으며, 《Material Connection》(제인 롬바드 갤러리, 뉴욕, 2017), 《Asian Corridor, Culture City in East Asia 2017》(니조성, 교토아트센터, 2017), 《올해의 작가상 2016》(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타이페이 비엔날레(타이페이국립미술관, 2016), 제5회 광저우 비엔날레(광둥미술관, 2015), 《교감》(삼성미술관리움, 서울, 2014) 등 다수의 국제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개성공단은 남한 정부와 현대 아산의 주도하에 북한 개성에 만들어진 산업 단지입니다. 2016년 남한 정부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압박의 일환으로 개성공단 폐쇄를 선언했습니다. 이에 대항하여 북한은 다음 날, 개성 공단에 자리 잡은 남한의 모든 인원에게 북한 시간 17시, 남한 시간 17:30분까지 전원을 추방하고 자산을 동결한다는 당혹스럽고 갑작스러운 결정을 내립니다. 북한의 선포 후 4시간 동안 남한의 기업들은 그들의 피땀으로 이뤄낸 사업장을 아무런 기약 없이 탈출해야 하는 영화와 같은 엑소더스가 진행되었습니다. 남한의 기업인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어떤 체계적인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 그들이 타고 왔던 차 안에, 위에, 앞에, 뒤에 가능한 많은 물량의 생산품을 싣고 남한으로 향하게 됩니다. 두 사진은 개성을 탈출하는 행렬 중 포착한 작은 저널리즘 사진을 재해석하고 가공한 사진입니다. 해체하고 다시 형태를 만드는 콜라쥬 방식을 사용하여 마치 분해나 분열, 그리고 뒤틀어진(deformed) 신체와 상황을 은유합니다. 이 차량들은 더 이상 이동 수단이 아닌 신체와 상실을, 부재를 의미하게 됩니다. 새로운 지도를 갖고 항해를 해나가던 최초의 이주민(기업)으로서의 삶이, 그들의 역사가 시대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은 채 완장을 찬 최고 권력인 두 국가(또는 분단된 한 국가, 지도는 국가가 만들었다.)에 의해 분해되고 해체되었습니다.
혜안폴권카잔더HaeAhn Paul Kwon Kajander
[파주] 캠프그리브스 도큐멘타

혜안폴권카잔더, 교동도 리서치 이미지(허수아비 경찰), 2023, 작가 제공
혜안폴권카잔더(b. 1980, 1985)는 조형적 설치와 옻칠작업을 중심으로 치북툭(캐나다 할리팩스)에서 활동하는 듀오입니다. 주어진 이름과 성을 엮은 그룹명으로써, 현대 개인 소유권을 바탕을 둔 저자성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정체성의 구성성을 다룹니다. 주요 개인전으로 《맥시멈 서퍼링 어롱 더 웨이》(프란츠 카카, 토론토, 캐나다), 《피어링 인투 플러싱》(트릴로바이트 에 르 프누, 몬트리올, 캐나다)이 있고, 그 외 갤러리 니콜라 로베르(토론토, 캐나다), 잭 배럿 갤러리(뉴욕, 미국), 줄리어스 시져(시카고, 미국), 스몰 암즈 인스펙션 빌딩(미시소거, 캐나다), 네리 바랑코(멕시코시티)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가하였습니다. 2024년에는 쿤스트 버라인 토론토의 기획으로 이뤄지는 공공 프로젝트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혜안폴권카잔더는 현재 NSCAD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캐나다 예술위원회와 온타리오주 예술위원회, 토론토 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았고, 프란츠 카카 갤러리의 소속 작가입니다.
혜안폴권카잔더는 캠프그리브스로 알려진 옛 미군 시설의 화장실에서 다수의 작업이 들어간 장소 반응적 설치 작업을 선보입니다. 그 중, 〈너와 나 가장(假裝)행렬〉은 과속 방지를 위해 남한의 고속도로 갓길에 흔히 세워져 익숙한 T자 모양의 경광등을 각색하여, 교동도의 국경 근처 논에서 우연히 발견한 허수아비를 연상시켰습니다. 모방 경찰 조명을 이용한 그들의 은유적 접근은 믿음과 이념에 질문을 던집니다. 운전자들에게 인식되자마자 징벌과 징계의 상징을 무의미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 대부분의 구간을 집요히 점찍는 경광등은 권력의 힘(실제 또는 상상된)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그들은 양극화되는 정치적 상황을 빨강과 파랑, 보색으로 대표하여, 남쪽과 북쪽, 물과 불, 가득 찬 것과 텅 빈 것, 현존하는 것과 사라진 것, 전체와 분열된 것, 부자와 가난한 것, 위와 아래, 안팎, 너와 나와 같은 이분법을 연상시킴으로써, '분열'이라는 개념에 문제를 제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