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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DMZ

DMZ OPEN 콘서트

한여름을 씻어내는 재즈 연주회,
DMZ 오픈 콘서트-피스 빌리지 JAZZ

여름 막바지, 가장 뜨거운 열기를 선선하게 식혀 준 ‘피스 빌리지 JAZZ’

피스 빌리지 JAZZ 공연무대

재즈 공연의 황홀함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악기마다의 선율이 치열하게 이어지는 순간순간, 그 멜로디들은 우리에게 온몸을 적시고도 남을 정도의 짜릿함을 선사한다. 햇빛이 살결을 타고 흐르는 여름 낮의 찬물 샤워처럼 말이다. 8월 19일 토요일에는 DMZ 오픈 페스티벌의 일환으로서 열린 ‘피스 빌리지 JAZZ’는 여름 막바지, 가장 뜨거운 열기를 선선하게 식혀 주었다.

갤러리 그리브스 입구

이날의 공연은 경기도 파주 캠프그리브스에 속한 ‘갤러리 그리브스’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열렸다. 캠프그리브스는 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국전쟁 이후 50년 동안 미군이 주둔하던 캠프다. 우리나라 국민으로써는 전쟁의 상처를 여과 없이 보여 주는 뼈아픈 공간이기도 하지만, 미군이 철수한 뒤 경기도로 반환되어 현재는 다양한 의미의 문화복합시설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날 피스빌리지 JAZZ의 공연장으로 활용된 갤러리 그리브스는 미군 주둔 당시 볼링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인데, 전시 공간으로 손색이 없도록 내부 리모델링을 거쳤다. 네온사인 간판이 걸린 입구를 통과해 들어가면 공간 내에서 다양한 전시를 진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본격적인 공연 전에 전시관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 이곳에서는 <세 개의 선:1953 정전협정>, <젊은 날의 초상, 우리들의 젊은 날> 등 다양한 테마의 기획 전시들이 꾸려져 있었다. 특히 <젊은 날의 초상, 우리들의 젊은 날>은 정전 협정 70주년을 맞아 열린 갤러리 그리브스 기획전으로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 용사들의 이야기를 한 명 한 명 섬세하게 조명하고 있어 눈길이 갔다. 전시관 한가운데를 장식한 그들의 흑백 초상들 또한 그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되짚게 만들었다.

재즈 공연을 하고있는 연주자들오늘의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객들이 하나둘 자유롭게 착석하며 자리를 채워가던 무렵, 공연팀이 전시관을 가로질러 등장했다. 이날 공연을 맡은 팀은 노슬아재즈콰르텟. 피아니스트 노슬아를 중심으로 드러머 서수진, 베이시스트 김영후, 색소포니스트 이수정이 모여 총 일곱 곡의 프로그램을 연주했다.

화사한 분홍빛 정장을 입고 나온 피아니스트 노슬아 씨는 건반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듯 첫 곡의 연주를 시작했다. 첫 곡은 캐나다의 작곡가이자 트럼펫 연주자인 케니 휠러의 <Kind Folk>. 매끈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된 음악은 중반에 접어들어 색소폰 연주가 힘 있게 끌고 나가는 동시에, 베이스와 드럼이 흐름을 탄탄하게 받치며 이어나가는 형태로 연주되었다. 재즈 연주의 묘미는 각각의 악기가 서로를 지지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보여 주는 점이다. 첫 곡부터 어느 악기 하나가 밀리지 않고 치열하게 선율을 쌓아나갔는데, 그 밀도와 압도감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연주였다
음악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감탄과 박수가 동시에 터져나왔다. 연주를 마친 피아니스트 노슬아 씨는 연주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로 입을 열며 케니 휠러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들려주었다. 이날 노슬아 씨는 연주 사이사이 쉬는 시간마다 참여한 연주자들과 프로그램 곡에 대한 꼼꼼한 소개를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재즈를 잘 모르는 관객에게도 음악이 한결 친절하고 친숙하게 느껴지도록 신경 쓴 점이 섬세하다고 느껴졌다. 

연주를 하고있는 색소포니스트 이수정과 베이시스트 김영후1 연주를 하고있는 색소포니스트 이수정과 베이시스트 김영후2

두근거림을 뒤로하고 다음 곡. 케니 휠러의 <Everybody’s Song But My Own>으로 연주가 이어졌다. 이 곡에서는 베이스의 독주가 이어졌다. 베이스의 감미로운 선율이 멜로디라인을 만들어나가고, 그렇게 끌고 온 멜로디를 색소폰이 받아주면서 선율을 구성해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재즈라는 장르 특유의 밀고 당기는 재미랄까. 연주 속에 담긴 팽팽한 텐션이 여실히 전해지는 연주였다.

드러머 서수진이 연주를 하고있다.이날의 프로그램은 연주자들과 함께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만든 프로그램이라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특히 드러머 서수진이 추천했다는 알 프리슈의 <This is No Laughing Matter>는 프로그램의 중반부에 연주되어 분위기 전환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베이스의 묵직한 소리로 시작된 연주는 귓가를 간질이는 심벌즈의 소리를 배경 삼아 느릿한 템포로 흘러갔다. 완급 조절이 선명한, 부드러운 동시에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연주. 원곡 또한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가사로 재즈 팬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하니 궁금하다면 찾아 들어볼 수도 있겠다.

이어진 연주곡은 <L’illusionniste>으로, 오늘 공연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노슬아 씨가 작곡했기에 더욱 특별했다. 노슬아 씨는 얼마 전 첫 앨범 <Nohmad>를 발매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 앨범에 수록된 오리지널 곡인 동시에 현재까지 한국에서 연주된 적이 없는 곡이라 기대가 컸다. 원곡은 17인조 재즈 빅밴드 편성인데, 이날의 공연을 위해 노슬아 씨는 특별히 콰르텟 편성에 맞는 편곡도 거쳤다고.
그리고 이후로 펼쳐진 연주는, 관객들의 기대를 확실하게 압도했다. 악기 네 대의 소박한 편성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널찍한 갤러리 그리브스 장내를 채웠다. 그 밀도가 피부로 와닿으며 느껴졌다. 베이시스트 김영후 씨가 들려주는 조화로운 선율에는 많은 관객들이 옅은 감탄을 내뱉었다.

공연을 감상하는 관객들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노슬아

이날의 공연에는 120명 정도의 관객이 참석했지만, DMZ와 캠프그리브스를 관람하기 위해 방문했던 관광객들도 음악 소리에 홀리듯 갤러리 그리브스에 들어와 연주를 감상하며 머무르기도 했다. 마치 거리 공연을 보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처럼 일반 공연장이 아닌 전시관에서의 연주는 아마 관객들에게도 생경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나 또한 재즈가 아무리 자유롭고 격정적인 장르라고 해도, 전혀 다른 환경에서도 잘 연주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번 피스 빌리지 JAZZ는 평범한 공연장에서 연주되지 않았기에 더욱 흥미로운 공연이 되기도 했다. 흔히 상상하는 일방향 무대와 관객석이 아닌 연주자들의 옆과 뒤가 뚫려 있는 형태의 공연장이었기에, 여러 방향에서 연주자들을 바라보며 향유할 수 있는 공연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여러 관광객들도 자유롭게 오가면서 연주를 감상했기 때문에 그들이 내뱉는 작은 숨소리와 감탄들이 함께 곁들여지며 한 곡처럼 어우러지기도 했다. 더욱 풍성한 공연이 되었다.

연주하는 노슬아재즈콰르텟‘음악은 형체가 없는 유산’이라고 언급하기도 한 노슬아 씨는 프로그램의 막바지에 다다라 공간과 잘 맞아 떨어지는 특별한 곡을 하나 연주했다. 바로 평화와 희망을 노래한 밥 딜런의 <A Hard Rain’s A-Gonna Fall(세찬 비가 오려 하네)>.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동시에, 참신한 음악과 시적인 노랫말을 통해 대공황과 전쟁으로 인한 혼란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선사한 인물이다. 한국전쟁의 상흔을 선명히 담고 있는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희망의 음악은 이날 공연을 관람한 많은 사람에게도 따스한 위로가 되었다.

피아니스트 서수진이날의 공연은 현존하는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라 알려진 프레드 허쉬의 <Heartsong>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곡은 프레드 허쉬의 곡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오리지널 곡으로, 밝고 경쾌한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어 이날 공연의 마무리를 산뜻하게 만들었다. 

공연을 마친 연주자들
피스 빌리지 JAZZ의 연주가 모두 끝난 뒤 공연장을 벗어났을 때 해는 살짝 기울어 있었다. 공연의 두근거림이 채 가시지 않아 숨을 고르던 중 가벼운 바람에 머리칼이 날렸다. 그때가 되어서야 이제 처서를 코앞에 두었구나,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꿉꿉한 몸과 마음을 적시는 물과 같은 재즈. 그 공연의 끝에 서늘한 가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